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지난 7월1일 브루나이에서 한-일 외교장관이 만났다. 한국과 일본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뒤 외교 수장들이 대면하기까지 반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그만큼 한-일 간에 가로놓인 골이 깊고 앞길도 험하다.
한국 내에서 회동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신중론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타이밍과 내용 등 여러 면을 고려할 때 현명하고 의미있는 외교적 포석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과 6월에 미국과 중국을 방문해 정상외교를 전개했다. 두 방문 모두 의전상으로 환대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외교적 성과를 토대로 여러가지 장애 요인이 많지만 우리 외교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 한-일 관계를 전략적으로 재구축해야 할 단계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지역 협력을 위한 ‘서울 프로세스’ 구상을 표방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 질서 형성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일본을 포함해 역내 각국과의 협력적 관계가 필수적이다.
물론 새 정부 출범 뒤 한-일 관계가 외교적 단절 상태로까지 악화된 데에는 아베 정권의 책임이 크다. 4월에 예정되었던 윤병세 외교장관의 방일도 아소 부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직전에 취소되었다. 외교장관 회동을 전후해서도 아베 정권 관계자의 감정적 언동이 찬물을 끼얹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일 통화스와프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것이 한-일 외교장관 회동을 이끌어냈다”고 자평했다. 일본이 “경제 카드”로 압박하자 한국이 “굴복”하고 회담을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도 맞지 않고 외교적 결례이다. 일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듯이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일본 쪽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 타진해 온 바 있다. 중-일 간의 외교 갈등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 수복은 일본에도 과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누가 먼저 회담을 요청했는가”를 둘러싸고 자존심을 내세우고, “외교적 압력의 성과”로 선전해야 할 만큼 일본이 심리적 여유를 잃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런 불필요한 감정적 발언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도 이들 문제 발언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소모전에 휘말릴 뿐이다.
다행히 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의 돌출된 우경화 언동이 외교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짧고 원칙적인 만남이었음에도 한-일 외교장관 회담 기사가 주요 일간지의 1면 머리를 장식했다. 한-일 외교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이달 말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 자민당의 행보를 시야에 넣으면서 대일 외교의 포석을 전략적으로 구상해야 할 때다.
첫째로, 당분간 한-일 정상회담은 어렵겠지만 가을 이후 일련의 다자회의를 활용한 다양한 수준의 외교적 접촉은 적극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일 갈등으로 개최가 지연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담은 개최국인 한국의 조정 과정 자체가 한-일 외교당국의 중요한 전략적 협의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참의원 선거 승리가 확실시되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가속을 우려해 외교적 신중론을 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외교적 포석을 잇달아 전개하는 것이 야스쿠니 참배와 같은 우경화 행보를 억제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도 있다.
둘째로, 현재 한-일 현안이 되어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국제적 문제제기를 계속하면서, 동시에 한-일 외교의 재개 틀 안에서 다시금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 국내적으로는 위안부 문제의 적극적 해결을 추진할 세력과 계기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제 여론을 배경으로 하면서 일본 자신에게도 필요한 전략적 대응을 설득하고 촉구해 가야 할 것이다.
셋째로, 일본에 대한 공공외교를 한층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한-일 갈등으로 대한 여론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 시민의 시각이 정치권보다 온당하고 균형 잡힌 부분도 있다. 뿌리를 잃은 듯 요동치는 일본의 상황을 보면서 사회문화적 교류라는 기초작업의 중요성을 새삼 통감하는 요즈음이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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