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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슬픔이 슬픔을, 눈물이 눈물을…

등록 2013-07-30 18:46수정 2018-05-11 15:13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미국에서 여든네살 먹은 여자가 복권에 당첨되었다. 사상 몇번째로 큰 몇천억이라 했다. 댓글 가운데 “나는야 스무살 백수! 곧 죽을 사람이 돈 있으면 뭐하나? 하나도 안 부럽다. 돈 한푼 없는 내가 더 행복하다”가 있었다. 좀 착잡했지만 그 젊음의 건강함이 유쾌하게 전해왔다.

그렇다.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늙음이나 죽음과 바꿀 수는 없다. 아무리 큰돈도 생로병사를 비켜가게 해줄 수는 없다.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의 숫자는 지금 인구의 열다섯 배. 세계인구를 70억명으로 보면 1050억명. 지난해에 과학자들이 계산해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것처럼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은 태어나서 죽음까지이며 죽음의 영역은 인간의 영역은 아니다. 1050억명 가운데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죽었다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다.

올해 들어 두명의 지인이 목숨을 끊었다. 몇번 어울린 적이 있었던 50대의 여성은 항상 주변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고민상담을 유쾌하게 해주던 친구였다. 젊은 친구는 한번 인사만 나누었던 30대의 미혼남성인데 누구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단 한번의 기회인 삶인데 이렇게 쓸쓸하고 적막할 수 있을까. 서둘러 매장하고 화장하고 돌아선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무한책임이다. 아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나는 그가 죽었을 때 어디 있었을까.

누구 한 사람 자신의 편이 되어 힘이 돼줄 수 있는 대상이 없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적막강산이고 기댈 곳이 하나도 없다는 느낌으로 최후의 선택을 하는 것이 자살이다. 자신의 힘겨움을 털어놓는 것이 상대에게 부담을 줄까봐, 자신도 누군가가 힘들게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부담을 느꼈으니까라고 조용히 혼자 삼킨다. 그런 세상이다. 그런 인심이다. 불행은 전염된다고 생각하고 빨리 잊고 싶어하고 털어버리고 싶어한다.

양희은의 <그대가 있음에> 노래에 …슬픔이 슬픔을, 눈물이 눈물을, 아픔이 아픔을 안아줄 수 있지요…라는 가사가 있다. 슬픔과 눈물과 아픔을 진정으로 경험하고 같이 울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절창이다. 지인의 자살 앞에 사람들이 오열하는 것은 그가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손을 잡고 통곡하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상대가 왜 내가 될 수 없었을까, 과연 그가 찾아왔을 때 손 잡고 울어 주고 더 많은 아픔을 슬픔으로 안아주고 힘을 보태줄 수 있었을까라는 후회와 자책 때문이다.

참 많이 죽는 세상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오이시디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과 노인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경제적 원인과 외로움으로 인한 노인의 자살은 어찌보면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핵가족이 급격히 진행된 우리 사회가 닥친 필연적인 문제다. 그러나 청소년들과 젊은층, 한창 기운이 좋은 중장년까지 자살이 느는 사회적 현상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아픔과 슬픔과 눈물을 받아주고 위로하고 안아줄 영역이 없을 만큼 각박하다는 증거다. 사회안전망을 거론하기에 앞서 개인적·가족적 영역에서도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같은 운명, 그리고 그중에 나도 하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고 다른 사람의 자살도 나의 자살로 바꾸어 놓고 볼 수 있다. 각 개인마다 저마다 짊어지고 있는 고통들을 들여다 보면 그 사정이 내 사정이고 내 사정이 그 사정일 수 있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어지럽게 돌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힐끗 바라보고 안됐다 하는 순간 다시 롤러코스터의 손잡이를 꼭 붙잡고 돌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아닌가 싶다.

매일 죽고 싶다고 입에 달고 사는 후배 하나에게 말했다. ‘죽고 싶다고 하지 않아도 죽게 되어 있다, 뭔 안달이냐’ 했더니 ‘맞아요.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보고 싶어한 오늘인데…’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젊은 사람들의 자살은 나이 든 사람들을 주눅들게 한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가해자가 된 느낌이어서…. 그들의 살려달라는 비명과 절규를 외면한 것 같아서….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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