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행복해?” 어느 날 아내한테서 대뜸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난감했다. 어떻게 답해야 하나? “응”이라고 했다간 “정말?” 하면서 후속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상상해보라. 질문자는 여론조사원이 아닌 아내다. ‘아내’란 어떤 존재인가? 타인에겐 잘 드러내지 않은 갖은 ‘찌질함’과 비겁까지 속속들이 아는 존재가 아닌가? 질문은 애초부터 ‘예스’라는 답을 듣기 위한 게 아니다.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던지는 이런 유의 질문은 답을 기대하기보다, ‘내가 지금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를 알아서 살피라’는 경고의 메시지일 때가 더 많다. 척하면 알아채야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편들은 대체로 둔감하다.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바 없기에 “아니”라고 답할 까닭도 없었다. 이럴 땐 역공이 최고의 전술이다. 약간 짜증스런 목소리로 “사람이 행복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 그걸 예스와 노란 단 한마디로 답할 수 있어?” 하지만 ‘대한민국 아내들’은 다른 건 몰라도 남편들의 속내만큼은 기막히게 간파하는 신묘한 혜안을 지닌 이들인 듯하다. 그날도 난 얄팍한 수로 대응하다 어김없이 아내로부터 야단맞은 ‘고개 숙인 남편’이 되고 말았다. 요즘 남편들은, 적어도 중·노년의 남편들은 어릴 적 어른들한테 꾸중 듣듯 아내들한테 야단맞는 존재들인 것 같다. 아닌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행복하세요?”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무지무지 행복해요”라고 신나게 얘기할 수 있다면 당신은 마냥 ‘행복한 사람’일 터. “불행해요”라고 단언한다면 “불행한 사람”일 게다. 그러나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행복과 불행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아마 상당수는 “예”, “아니요”를 명확히 말하기 어려워할지 모르겠다. 사실 답변은 질문을 받는 그 순간의 기분과 무관하지 않다. 실업자 신세인데도 마침 좋아하는 이와 재밌는 대화를 하고 있다면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고, 가정에 아픈 사람 없고 살림살이가 넉넉해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공부는 뒷전이고 사고뭉치라면, 이 아버지는 행복하다고 답하기를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 삶은 어쩌면 특정 잣대로 행복과 불행을 무 자르듯 규정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도대체 행복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과연 삶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행복론’이 넘쳐흐른다. 숱한 지식인 및 단체들이 제각기 행복을 설파하며 갖가지 처방을 내린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의 열쇳말도 ‘국민행복시대’였다. 성장에만 목매던 예전에 비해 분명 의미있는 흐름이나, 개중에는 행복이란 이름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 꾀어내는 정체 모를 곳도 있고, 인생의 목적은 오직 개인의 행복뿐이라는 ‘행복 지상주의’ 태도도 엿보인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 최인철 교수는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며, ‘쾌족’(快足)이라고 정의한다. 쾌활하고 만족스러운 상태가 행복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개인과 사회의 행복감을 높일 것인가, 곧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행복의 조건일 것이다. 구조적·물질적 요소와 개인적·정신적 요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요 요건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 것, 친밀한 관계, 성취감, 적절한 소득, 건강, 삶의 목표와 의미’ 등을 든다. ‘일자리 안정, 사회 통합, 신뢰 사회’와 이를 가능케 할 ‘좋은 정치’도 빠뜨릴 수 없다. 이런 요건으로 우리 사회를 본다면? 이런 상황은 어떤가? 혈세로 운영되는 정보기관이 대선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파괴했는데도 국정 기조로 ‘국민행복’을 삼은 정부가 나 몰라라 할 때 말이다. 행복은 주관적이어서 이런 상황은 나와, 우리와 무관한 것인가?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gon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아! 어깨…정찬성, 잘 싸우고도 불운에 지다
■ 서울대공원의 홍학이 날지 못하는 끔찍한 이유는?
■ 페북 ‘좋아요’ 1000개=1만7천원, ‘클릭 공장’을 아시나요
■ [화보] 19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해수욕장 풍경 변천사
■ [화보]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집회 현장
■ 아! 어깨…정찬성, 잘 싸우고도 불운에 지다
■ 서울대공원의 홍학이 날지 못하는 끔찍한 이유는?
■ 페북 ‘좋아요’ 1000개=1만7천원, ‘클릭 공장’을 아시나요
■ [화보] 19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해수욕장 풍경 변천사
■ [화보]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집회 현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