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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아베 외교는 현실노선을 취할까 / 이종원

등록 2013-08-04 19:11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어쩌면 예상했던 일이 터졌다고도 할 수 있다. 위태위태한 일본 아베 정권의 행보를 잘 나타낸 “사건”이었다. 아베 정권의 제2인자인 아소 부총리가 “나치스의 수법을 배우자”고 공언한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헌법 개정을 너무 떠들면서 추진하면 중국이나 한국이 반발하니, 바이마르 헌법을 어느 틈엔가 슬그머니 나치스 헌법으로 바꿔버린 나치스의 수법을 본받자”고 했다. 이전부터 실언과 망언으로 잘 알려진 정치가이기는 하다. 발언 전문을 보면 그 특유의 불완전한 문장이 많고 논리적으로도 혼란스럽다. 그러나 일본의 주요 정치가가 공식 석상에서 나치스를 긍정하는 발언을 행한 것은 중대한 사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 주요 국가라면 이 같은 발언은 즉시 지탄의 대상이 되고 공직 사퇴로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나치스 발언”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아소 부총리, 나아가 아베 정권의 “속내”가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아소 부총리가 나치스 찬미론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조용히 추진하자”는 점을 강조하는 맥락이 관심을 끈다. 이 발언이 튀어나온 집회는 대표적인 우파 논객인 사쿠라이 요시코가 이끄는 국가기본문제연구소가 주최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평화헌법 개정론자였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아소 부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도 헌법 개정도 “조용하게” 슬그머니 추진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목소리가 크고 요란스러운 우파들을 다소 진정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발언 내용도 부정확하다. 나치스는 바이마르 헌법을 개정하고 자신의 헌법을 제정한 것이 아니다. 헌법은 그대로 두고 의회 승인 없이도 정부가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한 전권위임법을 만들어서 헌법과 국회를 무력화했던 것이다.

아소 부총리가 여기까지 계산해서 한 발언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 정권의 방향성은 이와 유사한 부분이 없지 않다. 즉 우선은 헌법 개정을 “요란스럽게” 추진하기보다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헌법의 “개정”은 중장기적 과제로 하면서 당장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헌법의 “해석”을 바꾸자는 방침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역사 인식과 이념 문제도 되도록 쟁점화를 피하면서, 경제와 외교에 주력한다는 일종의 “현실 노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 총리의 일련의 발언에서도 나타났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로 앞으로 3년간은 선거가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장기 정권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서두를 것 없이 경제에 주력해 발판을 다지면서 단계적으로 염원을 실현해 가면 된다는 주장이 정권 내에도 강하다고 한다. 둘째로 일거에 밀어붙이기에는 여론이 소극적인 상황이 있다. 자민당이 압승했지만 여전히 개헌과 같은 이념적 쟁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절반을 넘는다. 선거 결과와 민의에 “뒤틀림”이 있다는 지적은 틀리지 않다.

셋째로 좀더 직접적인 것은 미국의 “압력”이다. 참의원 선거 직후부터 미국 주요 언론들이 미리 준비라도 한 듯이 일제히 아베 정권의 우파 행보에 경계감을 표한 데 이어, 7월26일 바이든 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아베 총리와 직접 만나 중-일 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못을 박기나 하듯이 그다음 날 미국 <블룸버그 텔레비전>과의 회견에서는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의 역할 확대를 기대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사이키 외무차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아베 총리가 “한·중과의 수뇌회담을 기대한다”고 유화적인 자세를 내세우는 배경에 미국의 강한 요청이 있음은 물론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아베 정권이 현실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당장 내년 소비세 인상이라는 과제를 앞에 두고 있어 경제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개정을 밀어붙이기보다 해석 변경이나 입법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중점을 두는 것도 이러한 흐름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현실 노선”이 구체적 내용을 동반한 것이 될지에 있다. 한·중과의 외교 수복이 조기에 실현될지도 여기에 달려 있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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