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동서냉전이 치열하던 1950년대. 미국 국무장관 존 덜레스는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이른바 ‘평화적 이행론’(Peaceful Evolution)을 내놨다. 사회주의권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이에 대응해 소련의 흐루쇼프(흐루시초프)는 서방 자본주의 나라들이 “평화적으로 사회주의로 진입할 수 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흐루쇼프식 ‘평화적 이행론’이었다. 중국이 소련과 이데올로기 논쟁을 벌인 불씨이기도 했다.
앞서 마오쩌둥은 1949년 베이징에 입성하자 “군자의 은택도 다섯 세대를 넘지 못한다”(君子之澤,五世而斬)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며 국가 흥망주기율을 이야기했다. 중국 역사에서 아버지 세대가 이뤄놓은 정권을 아들 세대가 잃어버린 사례가 너무 많다고 했다. 이를 막는 해법은 ‘생우우환 사우안락’(生于憂患 死于安樂), 곧 우환의식이 있으면 살고, 안락하면 죽는 것이라고 했다.
비록 우환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1956년까지만 해도 마오의 중국은 민주의 봄기운이 완연했다. 마오는 예술의 백화제방, 학술의 백가쟁명을 제창했고, 공산당과 다른 당파들과의 ‘장기공존 호상감독’(長期共存 互相監督)을 제시했다. 사회의 주요 갈등도 계급갈등이 아닌 선진적 제도와 낡은 생산력 사이의 갈등이라고 규정했다. 폭풍우와 같은 혁명은 지나갔고 경제 건설 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마오 정권의 황금기라고 한다.
하지만 1957년 들어서면서 추위가 닥쳐왔다. 덜레스의 ‘평화적 이행론’과 폴란드·헝가리에서 터진 반정부 사건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오는 사회주의 나라들에 ‘평화적 이행’의 사회적 단초가 있다고 판단하고, ‘적은 내부에 있다’고 봤다. 결국 마오는 다시 계급투쟁을 꺼내들었다. 1957년 ‘반우파 투쟁’으로 대륙을 휩쓸었다. 지난날 혁명 동지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평화적으로 전복하려는 내부의 적으로 내몰렸다. 마오는 때만 되면 덜레스의 ‘평화적 이행론’을 상기시켰다. 그는 ‘평화적 이행론’을 정권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했다.
“자산계급이 공산당 안에 있다”며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가 바로 그들이라고 지목했다. 결국엔 주자파 타도를 목적으로 해 문화대혁명을 일으켰고 나라를 10년이나 동란에 빠뜨렸다. 어찌 보면 덜레스의 ‘평화적 이행론’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어마어마한 정치태풍을 몰아오지 않았나 싶다.
덜레스가 ‘평화적 이행론’을 내놓은 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아이러니하게 덜레스가 사회주의 3~4대에 걸쳐 이루려 했던 사회주의권의 변화는 현실이 됐다.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했다. 북한은 이 나라들이 미국의 ‘평화적 이행’ 전략에 무너졌다고 비난한다. 일각에서는 오늘의 중국 역시 마오가 우려했던 ‘평화적 이행’이 현실이 됐다고 한다. 심지어 1970년대 초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이후 개혁개방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평화적 이행’ 전략의 일환이라고 한다.
덜레스의 ‘평화적 이행론’은 사회주의 나라들의 약점을 꿰뚫어본 것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이 ‘투쟁의 철학’이어서일까, 사회주의 나라들은 유독 ‘투쟁’에 능했다. 누르면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더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평화적 이행’에는 약했다. 서방의 ‘봉쇄전략’에 앞서 나라의 빗장을 닫아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오늘의 중국은 결국 덜레스의 말대로 된 것일까?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가장 격렬했던 것이 바로 ‘사’(사회주의)냐 ‘자’(자본주의)냐 하는 논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혁개방을 자본주의라고 했을 때 덩샤오핑은 계획과 시장은 경제수단이지 ‘사’와 ‘자’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며 ‘사·자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1950년대 덜레스나 흐루쇼프는 이념과 제도 차원에서 제로섬 게임의 ‘평화적 이행’을 역설했다. 덩샤오핑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조화하고 융합하는 윈윈의 ‘평화적 이행’을 내놨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세계가 중국의 방식에 눈길을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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