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미국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 임명 절차는 별다른 논쟁 없이 빠르게 진행된다. 대통령이 지명하면 별다른 논쟁 없이 상원에서 승인해주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차기 연준 의장의 경우엔 상황이 다른 것 같다.
내년 1월 두번째 임기를 마치는 벤 버냉키는 세번째는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왔다. 버냉키 이후엔, 재닛 옐런 연준 부의장이 미국 역사상 첫번째 여성 연준 의장으로 올라서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나왔다.
옐런은 여러 가지 자격 기준을 갖추고 있다. 부의장 근무 이전 그는 6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냈고 1990년대엔 빌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장으로 일했다. 버클리와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그는 학문적 업적도 탄탄하다.
하지만 옐런이 버냉키 자리를 물려받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차기 의장으로 지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2년 반 동안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과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책임을 맡았다.
서머스는 이 자리를 맡기 이전부터 이미 상당히 악명이 높았다. 1993년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내기 이전, 세계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서머스는 1994년 멕시코 경제위기,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때 긴급구제 프로그램을 짜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재무장관에서 물러난 뒤 그는 짧고도 격렬하게 하버드대 총장을 지냈다. 그는 총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많은 하버드대 교수진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었고 결국 2006년 총장직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그는 한 세미나 자리에서 과학 분야에서 여성 고위직 수가 적은 것은 유전자 문제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발언은 연준 의장직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옐런이 남성이 다수인 경제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몇 안 되는 여성이란 점에서, 여러번 논란이 됐다. 많은 여성단체들에선 서머스의 ‘유전자 발언’을 문제 삼으며 옐런을 옹호했다.
하지만 서머스 지명 문제는 성별 문제를 뛰어넘는다. 서머스는 거품경제와 위기의 원인이 된 많은 정책들에 관여한 인물이다. 클린턴 때 그는 금융 분야의 규제 완화를 지지했으며 브룩슬리 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이 파생상품 규제 강화에 나섰을 때 이를 적극 저지했다. 그는 또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분리를 명시한 글래스-스티걸법을 폐기하는 데도 앞장섰다.
서머스는 또한 1990년대 말기에 미국 무역적자를 이끈 ‘강한 달러’ 정책의 신봉자였다. 무역적자는 미국에서 창출된 소득이 미국 내에서보다는 국외에서 지출되면서 수요 부족을 일으켰고, 수요 부족은 2006년 국내총생산의 6%에 이르는 것으로 정점을 찍었다. 수요 부족은 1990년대에 주식 거품으로 이어졌고, 지난 10년 동안엔 주택 버블을 빚어냈다. 이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서머스는 또한 오바마 행정부에서 실패로 꼽히는 경제 정책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바마가 취임 초기에 시행했던 경기 부양책은 규모가 너무 작았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당시 이를 경고했었다. 추가의 부양 조처를 시행하기보다는, 오바마는 ‘녹색 회복’을 내세우며 적자를 줄일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오바마는 몇 년 동안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을 비난하면서도 더 이상 경기 부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었다.
서머스는 또한 대형 은행들이 금융위기 이전보다도 더 덩치가 커지도록 방만한 금융 정책을 펼치는 데도 관여했다. 이때는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몇몇 대형 은행들은 망할 가능성이 높았을 때로, 정부가 금융 구조를 개혁하는 아주 좋은 시점이었다. 당시는 은행들의 규모를 줄이거나 파산시키려는 게 아니라 정상화를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런 일들 때문에 민주당 내 많은 진보적인 인사들이 서머스의 연준 의장 임명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오바마와 민주당에 매우 도움이 되는 금융 산업의 저명한 인사들은 서머스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과연 누가 연준 의장으로 임명될까. 매우 흥미롭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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