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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아빠 어디 가… 10년 뒤를…

등록 2013-08-20 18:29수정 2018-05-11 15:14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카페에서 젊은 여자 둘이 휴대전화로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며 낄낄거린다.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성준이가 멋있다느니 준수가 더 좋다느니…. 새로 나온 아이돌 그룹인가 했더니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 가?>에 출연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이름이었다. 고등학생도 전문직 여성도 방학에 귀국한 재미동포 여대생도 어린 스타들에게 깜빡 죽는다. 심지어는 아빠감으로 윤민수가 좋으니 성동일이 좋으니 갑론을박이다.

물어보았다. 왜 재미있지? 아이의 재발견. 아이가 저렇게 사랑스러울지 몰랐어요. 결혼하고 싶어요. 아니 결혼이 안 되면 아이라도 낳고 싶어요. 출산율 저하를 막을 수 있는 최상의 프로그램이에요. 아니 아니 전 반대예요. 아이 낳지 못하겠어요. 아이를 낳으려면 저 정도의 환경은 만들어 줄 수 있어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들이 영어도 잘해요. 아이 낳기가 더 무서워졌어요.

인터넷에서 찾아 처음부터 다 보았다. 재밌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은 매회 성장했고 불쑥불쑥 크는 것이 느껴졌다. 하나같이 예의 바르고 천진난만하되 지나치지 않고 짜증도 내지만 어느 순간 뚝 그치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린다. 말도 어찌 그리 잘 듣는지 저런 아이들이라면 열도 키우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연예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 1위를 고수한 지 오래라고 한다. 다른 방송에서도 육아와 관련한 유사 프로그램들이 준비된다고 한다. 바쁜 연예인 생활을 하며 자녀와 함께해주지 못했던 아빠들이 처음으로 아빠 노릇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시청률도 대박이다. 밉상이었던 어떤 연예인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 쇄신이 되었다니 돈도 벌고 인기도 높아졌다. 아이들이 근심걱정 없이 까르르 웃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행복감을 준다. 그대로 힐링이다.

더운 밤 몰아서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슬그머니 미묘하게 불편함과 불안함이 들었다. 이제 그만하고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딱 이쯤에서 끝냈으면 하는…. 3년 뒤나 5년 뒤 아니 10년 뒤에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를 볼 수 있다면….

아마도 과일을 따서 파는 모습을 봐서였을까. 무인도로 간다는 예고방송을 봐서였을까. 예능이라는 게 심심하고 지루해지면 더 강하고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게 되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에게 무인도 체험이 왜 필요한가. 생존 연습이 무슨 소용일까. 처음 등장했을 때와 다르게 아이들은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고 어떤 이미지가 고정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 같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카메라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안다. 백번을 참고 백번을 다시 고쳐주고,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고만고만한 투정과 어리광, 자기 본위의 엄청난 이기심 다 가지고 있다. 숨김없이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제작진이 세심하게 시간을 골고루 배려해서 보여준다. 짜증과 투정도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만큼만 보여주는 거다.

리얼다큐를 표방한 것도 아니고 연예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리얼다큐로 받아들인다. 무인도 끝나면 외국여행 갈 건가. 아니면 외국인학교에서 외국인들과 생활하는 거 보여줄까. 봉사활동 시킬까. 양로원 보육원에 갈 것인가. 아이들을 시청률 동원과 돈벌이에 이용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공중파 방송이 정작 보도해야 할 것은 안 하고 연예나 드라마 시청률에 목매는 것을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카메라를 의식하는 삶을 살게 되는 데 대한 불안 때문이다. 곧 안티·차별·구별·왕따·위화감… 이런 말 나오고 어떤 아빠, 어떤 아이는 상처받는다. 원래 이렇게 오래 할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어떤 가족이 빠진다고 해도 또 다른 가족이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대중문화는 소비하고 버려지는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시청자들도 눈 돌리면 그만이다. 더 자극적인 어린이를 소비하는 연예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에 아쉽지만 이쯤에서 딱 끝났으면 좋겠다. 사랑스런 아이들이 잘 크기를 바라서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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