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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국미사 / 고명섭

등록 2013-08-25 19:10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로잡은 해적에게 물었다. “바닷사람들을 괴롭히는 의도가 무엇이냐?” 해적이 대답했다. “온 세상을 괴롭히는 당신의 의도와 똑같다. 다만 나는 작은 배를 가지고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해적이라 불리고, 당신은 같은 일을 함대를 거느리고 하기 때문에 제왕이라고 불릴 따름이다.” 기독교 신학의 건설자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주저 <신국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라가 정의를 잃어버리면 노략질하는 해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인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이야기를 로마 공화정 말기 정치가였던 키케로(기원전 106~43)의 <국가론>에서 빌려왔다. 이 일화 말고도 <신국론>에는 키케로의 저작에서 가져온 구절이 무수히 등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키케로는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은 모두 국난의 시대를 살았다.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을 지키려고 분투하다가 정적 안토니우스가 보낸 군사들의 칼에 목이 잘렸다. 그의 머리가 로마 광장에 내걸림으로써 공화정은 막을 내렸다.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로마제국은 동서로 나뉘었고 서고트족이 제국의 심장 로마를 짓밟았으며 반달족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를 휩쓸었다.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반달족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았고, 얼마 뒤 서로마제국은 멸망했다.

키케로는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스승이었다. 키케로 저작을 만났을 때의 감격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이렇게 전한다. “키케로는 내 생각을 확 바꿔놓았다. 나는 믿기 어려울 만큼 거센 정열로 불멸의 지혜를 사모하게 되었다.” 키케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음에 ‘지혜에 대한 사랑’의 불을 질렀다. 기독교로 회심하기 전에 그는 먼저 키케로의 철학으로 회심했다. 그리스 철학과 역사에 정통했던 키케로는 그리스 문헌들을 라틴어로 각색했다. <국가론>만 해도 플라톤의 <국가>를 로마의 정치 상황에 맞춰 다시 쓴 것이었다. 키케로는 국가란 인민의 것이며, 인민의 안녕·복지야말로 공화국의 본령이라고 선언했다. 키케로가 그리스 사상을 공화주의 언어로 번역했듯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앞시대 사상을 신의 정의에 비추어 다시 짰다. 그렇게 재구성한 사상으로 그는 당대 로마를 비판했다.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와 같다.” 지난 20일 수원교구 시국미사에서 이성효 주교가 국가정보원의 정치공작과 헌법유린을 규탄하면서 인용한 말이다. 이 말의 출처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제4권, 바로 알렉산드로스-해적 이야기가 등장하는 곳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묻는다. “정의가 없는 왕국이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강도떼도 나름으로는 작은 왕국이 아닌가? 이 무리도 우두머리 한 사람이 지배하고 약탈물은 일정한 원칙에 따라 분배된다.” ‘강도의 소굴’을 비판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서슬이 퍼렇다. 이 날카로움을 두고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빛이 어둠에 맞서 완강하게 투쟁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그 투쟁의 힘으로 역사는 불의한 ‘지상의 나라’에서 정의로운 ‘신의 나라’로 나아간다.

430년 8월 뜨거운 태양 아래서 76살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열병으로 쓰러졌다. 그가 병상에서 움직일 수도 없었을 때, 한 신자가 아픈 가족을 데리고 와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안수받기를 간청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다고 속삭였다. 그러자 신자는 꿈에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앞으로 가라. 그가 안수하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픈 사람의 손을 잡았는데 그의 병이 바로 나았다. 이 전해오는 이야기가 말하려는 건 뭘까? 간절한 믿음의 치유하는 힘 아닐까. 지금 그 간절함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후예들이 시국미사를 올리고 있다.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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