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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단기주의라는 질병’ / 존 페퍼

등록 2013-08-25 19:19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20세기 말 공산주의의 붕괴와 자유주의의 승리는 이전 시대의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역사의 종말’로 표현됐다. 시장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경제와 정치를 작동시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관념이 새로운 컨센서스로 형성됐다. 이것이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유명한 슬로건인 ‘더 나은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사반세기가 지난 뒤 상황은 어느 정도 달라졌다. 베이징·테헤란·하라레·리야드 등 일부 국외자들도 꽤 지속적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더욱이 민족주의 운동과 다양한 형식의 종교적 극단주의가 지속하고 있는 것은 ‘역사’가 아직 무대를 떠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실질적 도전은 승리한 시장민주주의라는 모델 외부에서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내부에서 왔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유연성은 많은 측면에서 트위터 시대의 빠른 기술적 변화에 이상적으로 적합한 것으로 증명됐다. 그러나 시장민주주의의 핵심에는 큰 결함이 있다. 정치가들과 은행가들이 즉각적인 만족을 충족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은 장기적 문제를 다룰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자신들이 ‘단기주의 병’에 걸려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민주 선거 문제를 생각해보자. 미국에서 하원 의원들은 법안에 초점을 맞출 시간이 거의 없다. 그들은 2년 임기 거의 전부를 다음 선거를 위한 자금을 모금하는 데 보내야 한다. 정치가들은 ‘정당 이해’의 관점에서 사고할 필요성 때문에 ‘국가적 이해’가 걸린 문제들을 다루는 이데올로기적 전선을 형성하지 못한다. 종신직으로 임명되는 대법원 같은 기관들이 단기주의를 견제하도록 돼 있지만, 장기적 관점을 갖기보다는 종종 자신들을 임명한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한다.

선거운동 자금을 모으건 세금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건 간에 정치가들의 단기적 집착은 불가리아·이집트·터키·브라질 등 전세계에서 항의시위를 촉발했다. 미국에서도 의원들의 직무수행에 대한 불만족은 83%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정치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단기적 이득을 취하도록 돼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신종 금융상품들을 고안한 중개인들은 이 혁신상품이 초래할 장기적 결과에는 무관심했다.

정치·경제학 이론들은 시장의 마법과 다양한 층위의 민주적 지배 덕분에 개별적 유권자들과 투자자들이 단기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 총합은 안정과 진보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제도들은 기후변화와 소득불평등, 위험한 무기의 확산 같은 장기적 문제들을 다룰 수 없음이 증명됐다.

중국 같은 나라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지난 몇십년간 중국 정부는 태양전지판 같은 녹색기술들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그들은 경제계획과 독재적 의사결정을 통해 장기적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자원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중국도 단기적 질병에 면역이 생긴 게 아니다. 하나의 예만 들면, 중국은 수자원을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남부에서 북부로 물을 수송하는 미봉책에 의존하고 있다. 소비를 줄이고 수자원 관리를 효율화하는 더 어려운 과제 해결은 미루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모델이 아니라면 시장민주주의에서 단기주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 미국에는 단기주의적 시스템에 장기적 계획을 접목시키려는 두가지 노력이 있다. 정치 영역에선, 많은 지역 공동체들이 ‘숙의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이것은 시민들이 모여 정책 현안들에 대한 심층 토론을 하고 이것이 정치적 선택에 관한 더 큰 토론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경제 영역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경기부양책과 보편적 건강보험, 은행산업 규제 등을 통해 정부의 역할을 확장하고자 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의 규모가 거대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가 회복할 수 없는 생태적 피해를 입는 걸 막기 위해 우리의 시스템을 충분히 바꿀 수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1989년 우리는 득의만만하게 ‘역사의 종말’을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정확히 단기주의 병에 걸린 모델의 승리 때문에 우리는 더 나쁜 운명을 생각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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