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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북의 모험주의 닮은 님의 일방주의

등록 2013-08-26 16:56수정 2013-08-26 17:13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21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내전중인 시리아 다마스쿠스 외곽에 화학폭탄이 터져 수백여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반정부군쪽은 사고 당일 사망자만 1300여명이라고 주장했지만, 국경없는의사회는 3~4백명으로 발표했습니다. 화학탄두를 탑재한 로켓이 주로 민간인 거주지역에 떨어져 대부분이 민간인, 특히 어린이와 여성이 많았다고 합니다. 화학무기의 특성성 희생자가 얼마나 더 늘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내전이란 정치적 충돌의 극단적 형태죠. 그런 충돌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이번 사건은 잘 보여줍니다. 요즘은 웬만하면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쉽게 확보할 수 있으니 으시시합니다.

정치는 이해 갈등이나 충돌을 대화로 조정하고 타협으로 절충하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습니다. 나라 간의 전쟁, 정치적 반대집단 간의 내전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막는 것은 정치의 마지막 의무가 될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인이나 무슬림을 하나의 대의 아래 결집시켜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쟁취합니다만 결국 분열주의자들의 총탄에 맞아 죽습니다. 그만큼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주장하지만, 정치인은 극단적인 분열과 충돌을 조장하고 선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화학폭탄까지 동원해 동족을 죽이는 선택도 예사로이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임기 6개월이 지났습니다. 님에겐 두 개의 정치적 과제가 더욱더 뚜렷해졌습니다. 남북관계에서 평화의 문제가 하나고, 내부적으로 정치적 통합의 문제입니다. 전자의 경우 북한 김정은 체제의 모험주의가 빚은 실책으로 말미암아 님에게는 최선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후자의 경우 님의 배타적 일방주의로 말미암아 위기가 심화되는 형국입니다. 양쪽에 정치적 극단주의가 미만해 있는 것이죠.

우선 북과의 관계는 개성공단 정상화에 이어 이산가족 상봉 일정까지 잡히는 등 남쪽의 페이스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쪽은 김정은 체제의 건재를 과시하고 핵협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했다가 극단적인 고립을 자초해 탈출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중국마저 독자적인 제재를 가하는 쪽으로 돌아섰으니, 체제 위기를 우려할 정도로 외톨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고립무원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이 이번 남북관계의 개선 쪽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사실상 개발이 완료된 상태에서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시도라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북의 핵무기는 대외적 협상력 제고가 아니라 국제적 따돌림만 강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누가 조폭에게 칼과 돈을 모두 허용하겠습니까. 국제사회는 북한에 핵무기와 경제력을 모두 허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님은 지금의 거저 주어진 기회에 안주해선 안 됩니다. 북이 어떤 입장이든, 그들이 갖고 있는 핵과 생화학무기는 우리에게 치명적 위협입니다. 중국이나 미국·일본처럼 팔짱끼고 쳐다볼 형편이 아닙니다. 북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그 점에서 지금, 제 잘못으로 발목이 묶인 김정은 체제가 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상황은 님에겐 최고의 기회입니다. 장삿속으로 말하면 최소한의 투자로 최고의 실리는 물론 신뢰까지 쌓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죠. 혹자는 놔두면 무너질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북한에는 미우나 고우나 형제지간이라는 중국이 뒤에 있습니다. 무너지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기회를 최대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기회는 님의 일방주의가 가져온 것이 아니란 것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국내 문제는 이와는 정반대로 님의 일방주의가 정권의 발목을 묶어놓고 있습니다. 국정원·경찰 선거개입을 덮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최소한) 방조하고, 또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와 정면에서 맞섬으로써 위험 선까지 상황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유화적인 야당 지도부와 더불어 국정조사를, 퇴로를 확보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도, 새누리당과 배후의 청와대는 진상 규명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방해하고 훼방놓는 데 활용했습니다. 그나마 검찰 수사 결과까지 뒤집는 데 이용하려 한 것이죠. 그러니 국정원의 정치공작에 부아가 난 민심을 눅이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 하야까지 주장하는 쪽으로 비등하게 됐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국정원 문제는 님의 문제입니다. 설사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경찰이 노무현 정권의 후계자가 당선되는 걸 막기 위해서 저지른 것이라 해도, 한쪽의 낙선운동은 다른 한쪽의 당선운동입니다. 게다가 님의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은 의혹 수준을 넘습니다. 기왕에 나왔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3·15 부정선거 때 이승만 대통령은 처음엔 모른 척, 무관한 척 하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자 이기붕이나 내무장관에게 떠밀었다가, 결국 범람하는 민심의 노도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물론 이번 국정원 대선 공작은 그때와는 양과 질에서 차원이 다릅니다. 단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해 특정 후보에게 유·불리한 짓을 했다는 그 성격만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결과에 대해 님이 책임있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님의 참모들이 의심하듯 퇴진운동의 빌미를 삼기 위한 음모로 해석하지 말기 바랍니다.

임기 첫 6개월을 보통 허니문 기간이라고 합니다. 새 정부가 저의 궤도를 달릴 수 있도록 야당이나 언론이 최대한 시비나 다툼을 자제하는 기간이죠. 불행하게도 지난 6개월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인사 파행이나 국정원 정치개입 문제는 물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라는 극단의 선택 등으로 논란과 시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님은 그 시비의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님의 일방주의가 시비를 키우고, 국론 분열을 극단으로 심화시킨 것입니다. 북쪽의 나이 어린 지도자의 실책에서 교훈을 얻기 바랍니다.

모험적 일방주의를 버리고 열린 자세로 속히 국정원 문제를 해소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님의 정부는 순항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정기국회, 지방선거 등의 정치일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불행해지는 것은 애꿎은 국민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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