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국제부장
미국 국방부는 1964년 8월2일과 4일 구축함 매덕스호와 터너조이호가 통킹만 공해에서 북베트남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다며, 그다음날 보복 공격에 나섰다. 미 의회는 그해 8월7일 군사행동의 전권을 행정부에 위임했다. 미국은 이듬해 2월부터 B-52 폭격기를 동원한 북베트남 폭격과 더불어 지상군을 투입했다. 이 전쟁은 1975년 4월 사이공 함락으로 끝났다. 그 와중에 수백만의 베트남 사람과 5만8000여 미군, 5000여 한국군이 목숨을 잃었다. 베트남전 당시 미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1995년 회고록에 통킹만 사건은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적어놓았다.
2003년 3월20일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를 갖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2004년 10월 미국 조사단은 “이라크에는 대량파괴무기가 없다”는 최종 보고서를 내놨다. 2011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군을 완전 철수시키며 종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내전의 수렁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고, 죽음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통킹만 사건과 이라크 침공엔 공통점이 있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거짓 깃발’(false flag), 곧 조작된 증거를 앞세운 침략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2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에서 자행된 화학무기 공격을 두고 ‘거짓 깃발’ 논란이 뜨겁다.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누가 공격했는가. 미국·영국·프랑스 정부는 시리아 바샤르 아사드 정부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281명(프랑스 정부 발표)~1492명(미국 정부 발표)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러시아 정부는 “전세가 유리한 시리아 정부가 국제사회의 군사개입을 불러올 화학무기를 쓸 이유가 없다”며 시리아 반군의 조작극이라고 주장한다. 유엔 조사팀의 ‘잠정’ 조사결과 보고서는 일러야 이달 중순께나 나온다. 둘째,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국 정부는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법은 오직 두 가지 경우에만 전쟁 행위를 ‘합법’으로 인정한다. 무력공격에 맞선 자위적 군사대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경우가 그것이다. 미국의 선택은 이 둘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실제 공격한다면 주권국에 대한 침략이자,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국제사회가 어렵사리 일궈온 근본 원칙을 허무는 일방주의적 폭력이다. 러시아 정부가 새로 제안한 ‘국제적 통제 아래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방안을 토대로 한 유엔 안보리 등의 논의가 외교적 해결의 길을 열 수 있기를 바란다.
3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악당과 악당의 싸움이다. 국제사회의 의견 분열은 ‘누가 더 나쁜 놈이냐’를 둘러싼 논란일 뿐이다. 아사드 정권은 독재로 악명이 높지만, 알카에다와 연계된 시리아 반군 또한 정부군 포로의 심장을 꺼내 먹거나 머리에 총을 쏴 즉결처분하는 잔인무도함으로 세계시민들을 경악게 하고 있다. 한쪽 편을 드는 것만으론 평화를 일굴 수 없다는 뜻이다. 국제사회가 멈칫거리는 와중에 2100만 시리아인 가운데 10만명이 죽었고, 625만여명이 떠돌이 신세가 됐다. 국외 난민이 200만을 넘어섰고, 국내 난민도 425만에 이른다. 시리아의 재앙에 국제사회는 즉각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전쟁은 아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외교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호소,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든 전쟁은 (동생인 아벨을 죽인) 카인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무시할 권리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없다. 정의의 전쟁은 없다.
이제훈 국제부장nomad@hani.co.kr
‘시리아 공습’?, 부시 닮아가는 오바마 [한겨레캐스트 #159]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