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에 꽂아도 좋을 사랑아” 이맘때면 머릿속에 맴도는 박용래의 시 ‘구절초’ 앞부분이다. 원산지가 아프리카인 마거리트는 5~6월에 도로 가에서도 피지만 구절초는 음력 9월9일 무렵 산에 가야 만날 수 있다. 이때 꺾어 약으로 쓰면 좋다고 해서 이름이 거기서 유래했다. 구절초는 손발을 따뜻하게 하고 피를 맑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병을 치료하는 데도 쓰인다. 가을에 피는 국화과의 식물들 중에 쑥부쟁이와 벌개미취는 연보랏빛을 띠는 반면에 구절초는 시리도록 청초한 흰빛이 압권이다. 다른 국화류에 비해 꽃의 크기도 크다. 전북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에서 열리는 구절초 축제에 다녀왔다. 해마다 구절초 향기를 듬뿍 탐할 수 있는 기회다. 다만 축제를 위해 인위적으로 심은 구절초의 개체수가 너무 많다는 게 나로서는 불만이다. 나는 산기슭에 홀로, 혹은 두세 포기 피어 흔들리는 구절초를 더 좋아한다. 산길을 가다가 그 옆에 가만히 앉아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다면? 구절초 가는 허리를 오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는 사내로서 자격 미달이다. 또 구절초를 만났을 때 한 송이쯤 머리에 꽂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 역시 아가씨가 아니다. 너무 과했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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