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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등록 2013-11-07 21:44수정 2013-11-08 11:14

남재희/언론인
남재희/언론인
긴급진단 남재희

50여년 전 조봉암사건 결국 무죄
진보당 해산 청구 너무 성급해

우리 헌법 사회민주주의 포괄
정당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 몫
잘나가던 민주노동당이 조승수·심상정 의원 등의 ‘종북’ 문제 제기로 분당이 되어 진보신당이 생겨날 때 처음으로 그 문제를 마주쳤으나 나중에 드러난 이석기 의원 그룹을 전혀 알지 못해 항상 궁금하게만 여겨왔었다.

이론상으로는 북한과 미국이 긴박한 군사적 대치를 하고 있으니까 북한의 핵무장 문제를 말함에 있어서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안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비판은 양쪽 모두를 향할 수밖에 없다.

북이 남침하여 6·25전쟁이 일어났다. 미군의 폭격으로 북한 땅은 거의 ‘석기시대’로 되돌려진 듯했다 한다. 그런 공포에서 미군의 위협에 대처하여 핵무장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원죄는 북한 측에 있지만, 안보와 평화를 담보해주는 평화협정 체결에 성의가 미지근한 미국에도 문제가 있다.

이때 평화와 통일을 원하는 측으로서는 미국을 비판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동안 보면, 북한에 대한 비판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의문이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 <한겨레>(11월2일치)에 실린 통합진보당 사람들의 발언을 보아도 그런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한반도가 분단돼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하여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 흠집이 있다고 해서 비판부터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남북 화해를 위한 전략적 고민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당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것만으로 비판받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3대 세습, 핵실험에 대해 ‘북한 잘했다’는 입장을 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 아니면 엑스 선택지만 제시하여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납득이 잘 안 간다. 진보당이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으니, 3대 세습이나 핵무기 개발도 비판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의문을 가져오던 중 어느 학자가 이석기 그룹은 대부분 ‘광주대단지 사건’이 길러낸 세대라는 주장을 발표하여 어느 정도 이해가 갈 듯했다. 서울 판자촌 등의 빈민들을 트럭으로 실어다가 살게 한 곳이 광주대단지가 아닌가. 그 처참했던 모습을 나이 든 세대들은 대충 알고 있다. 그러니 거기서 매우 급진적인 사상이 움텄다는 설명이다. 나는 안양천변 목동·신정동에 있던 비슷한 이주 단지를 접하고 살았기에 더욱 실감나게 느낌이 온다.

여하튼 국가정보원이 문제를 제기하여 지금 재판이 막 시작되고 있다. 국민은 그 진행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재판 결과에 큰 관심이 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문제를 풀 실마리가 처음으로 권위 있게 제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재판 결과를 기다려보지도 않고 어찌 성급한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인가. 물론 이석기 의원 그룹 재판이 아니어도 진보당의 정강·정책 등을 문제 삼아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수는 있다. 그러나 헌재는 사실심리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법리심리를 하는 곳이 아닌가. 지금 사실심리가 사법부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헌재에서 법리 중심의 심리를 한다는 것은 ‘격화소양’(신발 신고 발바닥 긁기)이 아닐까.

지금까지 운위된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아마 진보당이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에 위배된다는 이야기 같다. 그동안 일부 우파 이론가들이 우리의 국가 기본 원리(국시라 한다)가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대충 맞는 말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틀린 이야기다. 자유민주주의라고 좁히는 것은 억지이다. 그보다는 넓은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연세대 박명림 교수가 훌륭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 우리 헌법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와 민주(free and democratic)로 보아야 하고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로 해석할 수 없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도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포괄한다고 기록해둔 바 있다. 그 배경에는(바이마르 헌법도 있지만) 임시정부 때의 삼균주의의 흐름도 있다. 달리 말하여 우리 헌법은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의 흐름까지도 포괄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 복지국가 논의가 활발한 게 아닌가. 공산주의와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나 독재 체제는 부인한다.

여하간 진보당의 일부 그룹은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고 극복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그러한 진통은 당연하고 발전적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국정원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따라 격해진 분위기 속에서 ‘부분’의 문제라 할 것을 갖고 ‘전체’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도 잘못이라고 본다. 쇠는 뜨거울 때 담금질하라지만, 지금과 같은 흥분된 분위기에서는 오판이 나오기가 오히려 쉬운 것이다.

우리 국민의 민주 역량은 얕잡아 볼 수 없게 성장하였다. 정당에 대한 판단은 되도록 국민 스스로에게 맡기는 게 좋다. 그런 게 민주 방식이 아닌가. 우리 국민은 충분한 소화 능력을 갖고 있다.

죽산 조봉암씨의 진보당이 비극적인 박해를 당한 게 1958·59년이다. 그때 1심에서 권총 불법 소지 말고는 본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유병진 판사는 데모대의 위협에 피신을 했었는데, 그 피신처가 이승만 대통령이 총애하던 신도환 반공청년단장 집이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남겼다. 광기의 시기였다. 김갑수 대법관 주심의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것을 이용훈 대법원장 때 법원은 사법 살인 후 52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리고 지금 진보당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월12일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재판장 김종호) 선고문은 수준 높은 것이었다.(<한겨레> 9월13일치 참고)

“공동체의 의사와 권력 형성 과정에서 처음부터 소수자의 의사가 표출되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다수에 의한 독재 내지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되어 결국 민주주의를 부정하게 되는 결과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선고문에 진실이 압축되어 있다.

“역사는 두번 되풀이된다. 한번은 비극(悲劇)으로, 또 한번은 소극(笑劇)으로.” 역사에 남을 명언인데 그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번 대선 티브이 토론 때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발언한 이정희 후보가 경솔했던가.

남재희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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