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아침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옷장수는 월남치마며 ‘고리땡’ 바지며 두툼한 ‘돕바’를 보기 좋게 내다걸고, 약장수는 사람들 왕래가 잦은 길목에 차력사를 데려와 터를 잡고, 튀밥장수는 기계 밑으로 장작을 막 지피기 시작하고, 씨앗장수는 자루 주둥이를 벌려 이름을 알 수 없는 채소며 약초 씨앗들을 꺼내 놓고, 어물전에는 물이 번득거리는 생선들이 싱싱한 비린내를 풍기고, 대장간의 근육질의 어깨에는 땀이 맺히고, 옹기전에는 옹기들이 말갛게 얼굴을 씻고 나란히 앉아 있고, 강아지를 팔러 나온 사람은 갑자기 도망가는 강아지를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기도 하며, 소전에는 검은 ‘오우버’ 깊숙이 손을 찔러 넣고 어디선가 컴컴한 낯빛으로 소장수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으며, 장터 한쪽에 임시로 차린 국밥집의 가마솥에서는 돼지머리가 둥둥 뜬 국이 김을 뿜으며 부글부글 끓었다. 장날만 되면 이 세상이 거기 다 있었다. 아쉽고 부족한 것은 거기 다 있었으며, 넘치고 풍족한 것도 거기 다 있었으며, 반질반질한 것도 투박한 것도, 불쌍하고 가엾은 것도, 잘나고 못난 것도,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는 것을 빼고 있는 것은 거기 다 있었다.
1970년대 초반 박정희 정부는 5일장을 없애거나 축소시키려고 무모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새마을운동에 저해가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정부는 5일장의 문제점으로 불공정거래 성행, 지나친 소비 조장, 농민들의 시간 낭비를 꼽았다. 소가 웃을 농촌정책이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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