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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외교, 전쟁, 공작 / 이제훈

등록 2013-11-13 19:17

이제훈 국제부장
이제훈 국제부장
모든 주권국가가 외교를 한다. 사람이 사랑을 하듯이. 그 외교로 이른바 국가 이익을 지키며 공존의 기반을 넓힌다. 사람이 사랑으로 삶의 이유를 확장하듯이. 외교도, 사랑만큼이나 아름답다.

그 외교가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떤 나라, 주로 힘이 센 나라는 전쟁을 한다. 건국 이래 대략 한 해 한 차례꼴로 전쟁을 해온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중이다. 하지만 대량파괴무기(WMD)의 시대에 전쟁은 자멸의 동의어에 가깝다. ‘전쟁국가’ 미국을 빼곤 전쟁으로 문제를 풀려는 나라가 드문 까닭이다. 더구나 전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또는 타국의 침략에 맞선 정당방위를 빼면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다.

외교가 작동하지 않고 전쟁을 할 수도 없을 때, 국가는 공작에 의존한다. 대다수 주권국가가 정보기관을 두는 이유다. 그런데 공작은, 사람에 비유하자면, 사이코패스다. 법과 윤리를 모른다. 정부 전복, 암살, 매수, 조작, 무기 밀매, 납치…, 뭐든 한다. 세상의 어떤 정부도 정보기관의 공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요컨대 외교·전쟁·공작은 주권국가가 다른 나라를 상대하는 세 가지 수단이다.

미국은 전쟁과 마찬가지로 공작에서도 ‘미친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그런데 미국의 정보공작이, 에드워드 스노든의 거침없는 폭로와 언론의 취재로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각국 정상의 통신 도·감청, 워싱턴 외국공관과 뉴욕 유엔본부 등 도·감청, 구글·야후 등 거대 정보기업 해킹…, 무차별·전방위적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정보기관을 가진 모든 나라는 … 각국 수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려고 한다”며 ‘능력 있으면 너네도 해봐’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을 책임진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도 의회 청문회에 나와 “외국 지도자들에 대한 감시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내가 1963년 정보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의 하나도 이것(외국 지도자 감시)이다”라고 태연스레 말했다.

불행하게도 오바마와 클래퍼의 말이 전적으로 거짓은 아니다. 많은 나라가 타국 정상 등을 감시한다. 능력만 있다면 더 많은 나라가 그렇게 하려 할 터.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의 정보공작을 많은 이들이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로 치부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잊어선 안 될 게 있다. 공작은 그 추악한 본질 탓에, 공개될 경우, 공작 지시자와 가담자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작도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오바마나 클래퍼의 주장은 거짓보다 더 나쁜 ‘부분의 진실’이다.

한국의 국가정보원도 비밀공작을 한다. 그런데 공작의 대상이 북한이나 외국이 아니다. 한국(인)이다. 박근혜 정부가 검찰총장과 수사 책임자를 쫓아내며 덮으려 하는 ‘대선 개입 사건’이 그렇다. 이걸 국정원은 ‘종북세력 척결을 위한 안보 활동’이라 주장한다. 누군 다른 나라 정상과 외교관의 통신을 도·감청하는데, 누군 골방에 노트북을 끼고 앉아 허접한 댓글을 단다. 국정원은 양심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댓글 공작’ 현장이 최초로 발각된 김하영씨의 주장처럼, 국정원의 젊은 정보요원들은 자신이 한 일이 정말로 국가를 ‘적’한테서 지켜내는 안보 업무라고 확신했을까.

일찍이 20세기의 전설적인 독립언론인 이지도어 파인스타인 스톤이 경고했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관리들이 거짓을 유포하며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런 나라에는 곧 재앙이 닥친다.”

이제훈 국제부장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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