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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누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나 / 고명섭

등록 2013-11-17 18:47수정 2013-11-17 22:11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이 미국 뉴욕에 도착한 것은 1831년 5월이었다. 신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토크빌을 놀라게 한 것은 이 나라의 전례 없는 사회적 평등이었다. 구세계에 남아 있는 신분차별의 장벽을 이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미국 전역을 둘러보았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가다 배가 난파해 죽을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토크빌에게 미국 여행은 발견의 기쁨이 주는 흥분의 연속이었다. 이듬해 3월 프랑스로 돌아온 토크빌은 관직도 버리고 미국에서 관찰한 것들을 글로 쓰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근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기념비적 저작이 된 <미국의 민주주의>다.

토크빌이 만난 미국은 프랑스를 비롯한 모든 인류의 미래였다. 민주주의는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밀어닥치고 있었다. 어느 나라도 민주주의를 비껴갈 수 없었다. 그 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모범적으로 구현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그러나 토크빌의 눈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마냥 좋게만 비친 것은 아니었다. 토크빌은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모순, 치명적인 결함도 목격했다. 자기배반의 함정에 빠져 죽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민주주의였다. 토크빌은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원칙에서 바로 그 함정을 보았다. 다수의 지배는 제약 없이 관철될 경우, 소수를 짓밟는 다수의 횡포가 되고 만다. 토크빌은 ‘1812년 미국-영국 전쟁’ 때 일어난 볼티모어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당시 볼티모어 주민의 압도적 다수가 그 전쟁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한 신문이 전쟁에 반대했다. 분노한 군중은 인쇄시설을 부수고 사람을 때려 죽였다. 다수의 폭거였다.

토크빌은 다수의 지배가 ‘사상의 자유’를 질식시킬 수 있음도 알아보았다. “미국에서 다수는 ‘사상의 자유’ 둘레에 거대한 장벽을 세운다. 장벽을 넘는 사람에게는 재앙이 닥친다. 비방과 박해가 끊이지 않는다. 그의 정치적 생명은 영원히 죽어버린다.” 소수의 입이 막히면 민주주의는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토크빌이 걱정한 최악의 상황은 ‘다수의 지배’라는 원칙이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로 뒤바뀌는 것이었다. 다수 인민의 뜻을 빙자해 권력자가 전제적 지배자로 등장하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기고 독재로, 폭정으로 변신한다.

민주주의의 자기배반에 대한 토크빌의 걱정은 10여년 뒤 그의 조국에서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의 집권으로 현실이 됐다. 나폴레옹 1세의 조카였던 루이 보나파르트는 1848년 프랑스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75%의 압도적 지지로 제2공화국 대통령이 됐다. 권력을 쥐자마자 그는 공화주의 사상을 지닌 교사들을 내쫓고, 반정부시위자의 선거권을 빼앗고, 언론·출판·집회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는 법률들을 의회 다수파인 질서당의 손을 빌려 통과시켰다. 1851년 12월에는 의회를 강제해산하고 1년 뒤에는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이런 헌법 파괴 행위들을 루이 보나파르트는 매번 국민투표에 부쳐 승인받았다. 민주주의 형식을 빌려 민주주의를 교살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온 나라가 ‘민주주의의 자기배반’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집권세력의 전횡은 끝이 없고, 반대파 탄압은 마침내 통합진보당을 해산의 벼랑으로 내모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나아갔다.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킨다면서 바로 그 헌법정신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에는 국민 위에 전제군주로 군림했던 루이 보나파르트의 오만이 들어 있는 것인가. 나폴레옹 1세를 흉내 내던 루이 보나파르트는 1870년 프로이센과 전쟁을 벌였다가 비스마르크에게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프랑스 국민은 치욕을 느꼈고 황제를 쫓아냈다. 나폴레옹 1세의 비극은 나폴레옹 3세의 소극(笑劇)으로 끝났다.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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