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화가 황재형은 태백의 탄광촌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스스로 신입 광부 ‘햇돼지’를 자처한 것. 그는 낮에는 탄광에서 직접 곡괭이를 들었고, 일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는 붓을 들었다. 탄광은 ‘막장’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곳이며 더 이상 갈 데 없는 이들이 다다르게 되는 곳. 그는 생의 막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겪어야만 예술의 돌파구가 생긴다고 믿었다. 탄광이라는 현장에 밀착하면 할수록 생생한 예술의 본질에 닿을 수 있을 것이었다. 황재형은 화가로서 승부를 건 것이다. 그는 탄광을 타자의 시선으로 보지 않기 위해 무려 3년간 ‘산업전사’로 일했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단순한 현장체험이 아니었다. 깊은 밤에 눈보라처럼 달려드는 고독과의 싸움이었을 것이고, 질척질척한 생의 비의를 캐내는 참혹한 마음공부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광부화가’로 부르기 시작했다. 헤드랜턴을 쓰고 도시락을 먹는 ‘외눈박이의 식사’나 검은 개울물이 흐르는 ‘탄천의 노을’ 등의 작품은 그렇게 태어났다.
이제는 그의 이름 앞에 ‘광부’라는 말을 빼고 우리 시대에 가장 감동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불러야 한다. 나는 그의 작품 ‘연탄’의 이글거리는 불꽃을 좋아하고, 눈 쌓인 산줄기를 위에서 허공에서 내려다보는 ‘백두대간’도 좋아한다. 황재형의 그림은 평면이지만 그의 손에 의해 풍경과 사물은 하나같이 꿈틀거린다. 이 겨울, 가슴 쿵쾅거릴 일이 없다면 황재형의 그림을 보라.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