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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도 종부세 내고 싶다

등록 2005-09-01 17:47수정 2005-09-02 13:42

권태호 경제부 기자
권태호 경제부 기자
아침햇발
“<한겨레> 부동산 기사에서 ‘가진 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선연하게 읽혀진다”

지난 주말, <한겨레>를 떠난 한 선배에게서 스치듯 들은 말이다. 재정경제부를 출입하며 부동산 대책 기사를 쏟아냈던 터라 그 한 마디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렇다. 나는 부동산 기사가 봇물처럼 터지던 8월 한 달동안 ‘가진 자들’,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일부 언론’에 이글거리는 분노를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기자는 냉정해야 하는데. ‘세금폭탄’ 운운하며 타워팰리스 102평 보유세 폭등을 우려하거나, 중산층 사례로 시가 10억원 아파트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왈칵 욕이 튀어나온 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수루에 홀로 앉은 ‘불멸의 이순신’인양, ‘자나깨나 중산층‘만’ 걱정하느라 밤잠 못 이룬다’는 투의 기사와 컬럼을 대할 땐 더욱 그러했다.

<한겨레> 기사와 컬럼들은 반대로 ‘가진 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선배의 말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를 곱씹게 만들었다. 때로 나는 ‘가진 자’들을 꾸짖었고, 때론 가르치려 했던 것 같다.(이 글도 그러한 건지) 나는 그들에게 ‘승복’을 요구했던 것 같다.

2 대 8, 1 대 9 사회가 고착화되면서 소득계층간 갈등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정부는 이를 절묘하게 이용했다. 중산층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종합부동산세 대상을 ‘1.6%’로 극소화 시켰다. 6억원 이하 주택 재산세는 손도 안댔다. 정부는 “여론조사를 해보니, 70~80% 이상이 찬성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자기 돈 안 내고, 있는 사람 돈 걷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나? 보수언론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1.6%’에 이지메를 가한 것이다.(지금까지 그들이 부당하게 낮은 세금을 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종부세 대상자들 중 일부는 “차라리 강제수용하라”는 거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일부 언론은 ‘부유세’, ‘징벌적 과세’라 부르기도 했다.(이름도 참 잘 짓는다)

그러나 ‘1.6%’들이 발표 다음날 아침, 발빠른 보수언론의 안내에 따라 증여, 명의이전 등 ‘1.6%’답지 않은 추접스러운 짓을 하거나 이민사이트를 뒤적이지 말았으면 한다. 태어날 때부터 1%였던지, 눈부신 재테크와 노력으로 그 자리에 앉았던지 간에, 어쨌든 당신들은 이 땅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성공한 이들 아닌가?

공론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서민’이라 말하는 사람은 무대 위에 나서도, ‘부자’라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서민’인 그들도 할 수만 있었다면, ‘투기’를 했을 것이고, ‘가진 자’들에 대한 원망에는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질시도 물론 섞여있을 것이다. ‘서민’이란 단어는 어느새 무기가 되었고, ‘부자’는 ‘죄인’과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다. 이 비정상적 상황을 타개하는 길은 ‘서민의 의식변화’가 아닌 ‘1.6%의 행동변화’에 있지 않겠는가?

굳이 ‘사방 100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하라’는 경주 최 부잣집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부디,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내어달라. 당신들이 낸 돈은 내 아이 학교 운동장 한 켠에 나무 그늘 하나 더 만들어 줄 것이고, 내 아내가 빗물 울컥 토해내는 보도블럭에 치마 버리는 일도 없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종부세를 낼 ‘가진 자’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종부세, 나도 미치도록 내고 싶다.

권태호 경제부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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