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에 열여덟살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깨에 닿도록 머리를 기르리라. 축구를 할 때는 출렁거리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질끈 묶어보기도 하리라.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게 무엇인지 어머니께 분명하게 말씀드리리라. 책상 앞에 앉아 식물도감을 펼치기보다는 들길을 걸으며 허리 낮춰 들꽃들을 보리라. 마음을 흔드는 여자아이를 만나면 내가 먼저 말을 건네 보리라. 그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리라.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한 번 만져 봐도 되냐고 물으리라. 귀뺨을 맞더라도 용기를 내보리라. 내가 만약에 열여덟살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가 읽는 신문을 매일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으리라. 혼자 높은 데로 날아오르기 위해 공부하지 않고 여럿이 낮은 데를 살피기 위해 공부하리라. 밥상 앞에서는 고기를 덜 먹고 채소를 더 먹으리라. 쪽지 하나 남기지 않고 이유 없이 가출을 해보리라. 기차를 타고 가다가 허름한 역 대합실 의자에 누워 날을 새워 보리라. 새벽을 데리고 오는 첫 기차를 타리라. 휴전선으로 막힌 한반도가 서글픈 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뱅글뱅글 돌아다녀 보리라. 내가 만약에 열여덟살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최신 휴대폰이 없다고 안달복달하지 않으리라. 자전거를 타고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찾아가리라. 목덜미에 땀이 흐를 때까지 친구네 집을 향해 뛰어가리라. 숨 가쁘게 떨리고 설레는 시간들이 나의 편이므로 울고 싶을 때는 크게 울리라.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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