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역사학계에서는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사진은 2013년 12월2일 ‘친일·독재 미화 뉴라이트교과서 검정 무효화 국민 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정문 앞에서 교육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40
박정희 정권, 40년 전 국정교과서 만들어 교육을 파탄내더니…
또다시 교사와 학생을 좀비로 만들려는 발상은 비극을 낳을 것
박정희 정권, 40년 전 국정교과서 만들어 교육을 파탄내더니…
또다시 교사와 학생을 좀비로 만들려는 발상은 비극을 낳을 것
우동기 대구교육감의 올해 첫 공식 일정은 충혼탑 참배와 1972년 전국교육자대회 기념비 참관이었습니다. 교육자들을 정권 안보의 첨병으로 세우고, 교육을 체제 홍보의 수단으로 삼게 했던 1972년 3월24일 대구의 전국교육자대회, 그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앞에서 우 교육감과 간부들은 이렇게 다짐했다고 <매일신문>은 전했습니다. ‘선배들의 교육 의지를 올곧게 이어가겠다.’ 대구에 학생 자살 도시라는 오명을 안긴 바 있는, 바로 그 우 교육감입니다.
전국 시도 교육감 전원, 77개 대학 총장, 44개 전문학교 학장, 388명의 대학교수 그리고 모든 초·중·고교장, 모든 교육장은 물론 국회 문공위원들까지 동원되었던 대회. 참석자만 무려 8000여명에 이르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북한 혹은 나치 치하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교육자 군중 집회였습니다. 교육부는 괜히 마음이 찔렸는지, 이 대회를 두고 ‘관제 대회’가 아니라 교육자 스스로 국민 앞에서 총력 안보의 기틀을 교육적 측면에서 굳건히 다지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한 자발적 궐기대회라고 강변했습니다.
그날 박정희는 치사를 통해 이렇게 지시, 아니 명령을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오붓한 향락 생활이나 추구하는 시민 교육에 힘써 왔다. 이제 외국 교육 형태를 모방하고 추종하는 데서 탈피해 우리 국가 현실에 알맞는 교육, 우리 교육의 국적을 되찾아야 한다. …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고 우리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주체적 민족사관을 정립해야 하며, … 이는 정신적 국적 확인 운동이요, 조국 통일에 대비한 애국 운동이다.” 참석한 ‘교육자’들은 문교부가 짠 각본에 따라 4개항의 결의문을 발표하지요.
① 안보교육체제 확립. 국가의 안전과 겨레의 생존을 지키기 위하여 총력 안보체제를 확립해야 할 국가적 요청에 교육의 전 기능을 집중시킨다.
② 새마을운동 추진. 자립과 번영을 위한 거족적 노력에 보조를 맞추어 방방곡곡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마을운동에 우리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십만 교육자와 팔백만 학생이 다 함께 전진한다.
③ 국민 총화 저해 요인의 제거. 국민 총화를 저해하는 불신과 부조리를 제거하는 데 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것이며, 학풍을 바로잡아, 나라가 요청하는 인재를 기르는 데 열정을 다 바친다.
④ 교육 풍토 개선. 교육자는 겨레의 스승으로서의 품위와 자질과 권위를 스스로 바로 세워 교권을 확립하고, 학교와 가정과 사회의 일치 협조로써 학원에 공부하는 분위기가 충만하도록 열과 성의를 다한다.
헌법에 자유와 자주성과 중립성이 명시된 교육의 파산을 다짐하는 결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구 대회 7개월 뒤 박정희는 유신 쿠데타를 일으켜, 북한의 김일성 수령체제와 맞먹는 정권을 세웁니다. 그런 유신체제의 문교부는 이런 장학 목표를 제시합니다. “국적 있는 교육과 생산적 교육을 추진하여, 유신 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성실하고 능력있는 한국인을 육성한다.” 이에 따라 1974년 1학기부터 중·고교 국사 검인정 교과서 각 11종을 중·고교 각 1종씩으로 단일화합니다. 국정교과서입니다.
교육계로선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욕의 교육자 대회였으니, 누가 그 기념비를 돌봤겠습니까. 전두환 정권조차 외면했습니다. 그것을 우동기 교육감이 찾아내, 지난해 12월 입구에 안내표지판 2개를 설치하고, 기념비 주변의 잡목을 제거한 뒤 기념비 주위를 경계석으로 두르고 바닥에 자갈을 까는 등 ‘성역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총동원 체제의 계승, 발전을 다짐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후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이 폭발했습니다. 사실 오류, 표절, 왜곡, 근거 없는 주장 등으로 점철된 교학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일제히 거부당하자 화풀이하듯이 난장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42년 전 관제 궐기대회를 연상시킵니다. 우 교육감의 시무가 상징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국교육자대회를 뿌리로 해서 태어난 국사 국정교과서는 이런 걸 역사라고 학생들에게 주입시켰습니다.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하여… 북한 공산주의의 침략 위협을 증대시키는 어려운 시국을 맞이하였다. 이리하여 군부의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혁명군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 침략 위협으로부터 구하고…”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기 위해 뜻있는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5·16 혁명이다. 4·19가 독재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혁명이었다면 5·16은 혼란과 공산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혁명이었으니, 5·16은 4·19 정신의 계승이요 발전이었다.” “평화적 통일을 조속히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이로부터 사회의 비능력적·비생산적 요소를 불식하고 전근대적 생활 의식과 사대사상을 제거하여 한국적 민주주의의 정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걸 가르치는 선생이나, 그걸 배운 학생이나, 참으로 끔찍한 시절이었습니다. 그게 ‘사교화한 박정희 경전’이지 어떻게 교과서입니까.
우 교육감에 이어, 문용린 서울시교육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어도 국사교과서에 관한 한 국정이 어떤 면에서는 필요하지 않나 하는 발상 자체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교육자적 양심은 남아 있는지 말을 비비 틀었지만, 그도 결국 국정교과서 쪽의 손을 들었습니다. 지난해 10월 그는 이렇게 말했죠. “제도상으로 보면 그것(교과서의 자율화 검인정 방향)은 교과서 정책상 발전된 방향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큰 방향은 그 방향이 맞다.”
40여년 전 제정신을 가진 학자나 매체들은 국정교과서화에 비판적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이기백(서강대), 김정배(고려대) 교수 등의 입을 빌려 이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국사의 획일에서 오는 (대학 입학시험 혼란 방지) 이점은 있으나, 정확한 지식의 전달이란 점에서 무모” “사고의 폭을 넓혀주고 융통성을 길러주는 것이 고등학교 교육, 국정교과서는 암기 교육을 더욱 강조하는 폐단도 초래” “획일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
역사 연구의 중요성이 사건의 단순한 기술보다 올바른 이해와 해석에 있기 때문, 국정교과서는 다양성을 말살하고 획일성만 찾는 위험한 발상.” 교육자와 학생을 좀비로 만들려는 발상의 위험성은 머잖아 비극적으로 현실화됩니다.
망령이란 망령은 모두 불러내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대명천지에 웬 망령들의 춤판입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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