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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두 분, 잘 어울려요 / 이유주현

등록 2014-01-19 19:09수정 2014-01-20 09:13

10년 전만 해도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분단으로 끊어졌던 경의선·동해선을 연결한 것은 그 물리적 증거였다. 이와 함께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연결해 물류비용을 줄이고 교류와 협력을 증진해 유러시아 번영을 이루자는 꿈도 자라났다.

얼마 전 갑자기 ‘통일 대박론’을 펼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박근혜 대통령도 남-북-시베리아 철도를 잇는 것에 적극적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개인적으로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며 이를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라고 표현했다. 두 달 뒤인 11월 푸틴 대통령은 남한 주변 4개국 정상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두 나라 정상은 한반도종단철도-시베리아횡단 철도 연결에 협력하자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러시아와 남한이 가까워지는 것은 두 나라 모두 이해관계를 같이한다. 러시아는 저개발 상태인 시베리아 동부 지역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자원과 물류를 기반으로 100년 전 동북아에서 가졌던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한다. 한국도 러시아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주요 2개국(G2) 시대를 열며 미국과 맞서는 중국, 경제력의 퇴조 속에서도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미국, 그릇된 역사인식과 군사적 팽창주의로 이웃나라들과 갈등하는 일본,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 사이에서 불안한 처지다. 한반도 이해당사국 중의 하나인 러시아를 끌어들여 힘을 분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 대통령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지난 3일 문화예술인 신년회에서 푸틴 대통령이 보내왔다는 러시아 전통 목각인형(마트료시카)를 내보이며 “푸틴 대통령이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인형을 보내주겠다고) 한 줄 알았는데 실제로 최고 마트료시카가 왔다. 그래서 이렇게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구나 생각했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도 12개 세트인 이 인형을 공개하며 “한달 한달 모두 소중한 한러관계가 유지되면 좋겠다”고 적었다.

나는 박 대통령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1952년생 동갑인 두 사람이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무릇, 남녀관계를 포함해 모든 인간관계가 성공하려면 코드와 기가 맞아야 하며 삶의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의 성장 배경을 존중해줘야 한다. 누구나 잘 알듯 박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다. 비록 푸틴 대통령이 박 대통령을 비롯해 외국 정상들과의 회동 때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는 결례를 종종 저지르지만, 박 대통령으로부터 “약속을 잘 지키는 분”이란 칭찬을 받았으니 일단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카리스마, 즉 기(氣)에서도 두 사람은 막상막하다. 박 대통령이 ‘안광 레이저’를 쏘면 모든 사람이 쩔쩔맨다고 한다. 박 대통령 정도라면 푸틴 대통령의 매서운 눈빛에도 전혀 움츠러들 것 같지 않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대내외 정보 수집의 중요성과 그 활용에도 탁견을 지니고 있다.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지금처럼 한국에서 국가정보원의 역할을 놓고 논란이 벌어질 때 대담하고도 실용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롤모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니 박 대통령으로선 반갑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 서로를 계속 닮아간다면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정해놓은 ‘정상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선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가치의 다양성을 믿고 역사의 퇴행을 염려하는 두 나라 시민들에겐 재앙이 될 것 같다.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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