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의 4층 건물을 점거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옥상 망루에 불이 붙으며 농성자 5명, 경찰관 1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41
용산참사 5주기…그날 6명 생명과 상식도 함께 불타
박 대통령, 부당하게 숨진 당신의 국민 외면 이유는…
용산참사 5주기…그날 6명 생명과 상식도 함께 불타
박 대통령, 부당하게 숨진 당신의 국민 외면 이유는…
벌써 오년이 흘렀습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여성이 대한민국 정부의 수반이 되고, ‘국민 모두가 하나 되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의 약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만 덧없이 흘러갔을 뿐, 세상은 바뀐 게 없습니다. 정부가 가난한 국민을 폭도로 몰아 태워 죽인 용산 참사, 권력의 횡포와 겁박을 상징하는 용산 방화 살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세상은 변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가난한 이들을 집어삼킨 그 죽음의 불길은 밀양에서, 코레일에서, 전교조와 전공노 등 일하는 현장에서 더 거칠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2009년 1월20일 아침 7시20분, 권력이 남일당 망루를 불태우면서 죽인 것은 가난한 우리 이웃의 생명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상식 그리고 민주주의도 함께 불태웠습니다. 권력은 권력자의 것일 뿐, 주권은 권력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그날 이명박 정권은 선언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에 흔하게 떠돌아다니는 뉴스 채널 <와이티엔>(YTN)의 미공개 동영상은 이를 증명합니다. 크레인에 실린 컨테이너 박스의 경찰 특공대가 망루 양쪽을 잡아당기자, 망루 틈이 벌어지고, 불기둥이 망루 아래로부터 솟구쳤습니다. 불은 삽시간에 망루 전체로 퍼지며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덮었습니다. 그때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저기 사람이….’ 흐느낌 같기도 하고 오열 같기도 한, 애원 같기도 하고 절규 같기도 한 소리였습니다.
그 기이한 소리, 그건 1980년 5월27일 새벽 광주 거리에서 들려오던 가냘픈 여인의 방송음과도 같았습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그 흐느낌이 사라질 때쯤 계엄군은 시민군을 사살하고 도청을 접수합니다. 그렇다고 서늘한 대기를 떠돌던 그 소리까지 진압한 건 아닙니다. ‘우리를 잊지 마세요. 우리의 작은 평화, 작은 정의의 꿈을, 그리고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염원을.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남일당 주변에서 들리던 그 소리와 어쩌면 그렇게 같은지. “저기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폭도가 아닙니다. 도시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남일당 사람들이 원한 건 오로지 대화였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들은 척 안 하고, 소리라도 치면 입을 틀어막으니, 최후의 수단으로 택한 것이 망루였습니다. 옥상에서 엄동설한의 바람이나 피하자고 얼기설기 얽은 것이 망루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들에게 들릴 때까지 소리치고 또 소리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날 새벽 3시 함석 지고, 연료 들고, 먹거리 들고 올라가, 3시간 만에 얼렁뚝딱 게딱지 같은 공간을 세운 게 6시였으니 불과 25시간 만이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대화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불에 그을린 주검으로, 화염에 기도가 다 타버린 주검으로, 혹은 불구의 몸으로 그들은 끌려오고 실려나왔습니다.
그렇게 내쫓은 그 자리는 지금 주차장입니다. 아들딸 대학 보내고, 손주들 학비 용돈 챙기던, 수십 가족이 삶을 일구고 보람을 찾던 그 자리, 거기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피고 꿈꾸던 그 자리는, 꿈도 없고 사랑도 삶도 없는 주차장 빈터가 되어 있습니다. 10분에 1000원 혹은 2000원이 가난한 이웃들의 가족과 생명, 그들이 꾸는 꿈, 그들이 키워가는 희망보다 더 중요했던가요? 왜 쫓아냈죠. 왜 죽였습니까. 어떤 폭군이 들어서도 그 서러운 말들을 진압할 수 없을 겁니다.
그 흐느낌이 들리지 않습니까? 그 아픔이 느껴지지 않고, 그 몸부림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살아있는 주검, 영혼이 죽어버린 살덩어리일 뿐입니다. 악령의 지시에 그저 따르는 좀비.
인공위성이 태양계 밖으로 항해하는 시대에 웬 잠꼬대 같은 악령 타령이냐고요? 그러나 악령은 주술의 시대에도 있었고, 철학의 시대, 종교의 시대에도 있었고, 지금 디지털 시대에도 존재합니다. 악령이란 탐욕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그건 권력에 대한 욕망일 수 있고, 돈에 대한 환장일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악령이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사람을 팔고 사고 영혼 없는 노예로 만드는 자본, 영원한 자기증식(영구집권)을 위해 기만 고문 살인 방화를 불사하는 권력입니다. 용산 참사는 바로 그 두 악령에 의해 저질러진 인간 파괴의 전형입니다.
떼돈을 노리며 용산 개발을 추진한 건설자본, 떡고물이라도 얻을까 세입자를 내쫓으려는 지주들, 돈 몇 푼에 영혼을 판 폭력을 대행하는 용역 좀비. 그 땅에서 피땀 흘려 상권을 만들고 인간관계를 쌓아온 사람들, 나가면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를 사람들, 그래서 먹고살게 해달라며 버티는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해 불에 태운 경찰, 그 책임자를 공공기관장으로 임명한 정권, 송전탑 아래서 또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를 죽이는 정권, 그러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권력. 그런 것들이 악령이 아니고 무엇이며, 거기에 영혼을 판 자들이 좀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인도 방문에서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 라지가트를 방문했죠. 그곳에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인류 사회 구현…”이라는 문장을 방명록에 남겼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당신의 발에 밟혀 신음하고 있는 정의와 평화를 그곳에서 염원하다니…. 라지가트 기념단엔 이런 말 한마디가 새겨져 있죠. “오, 신이시여!” 1948년 1월30일 힌두-이슬람 화해를 촉구하는 기도회에 가던 중 암살당한 간디가 했다는 마지막 말입니다.
그건 2009년 1월20일 오전 7시20분, 용산 참사 현장에서 흘러나온 그 흐느낌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 신이시여.” “저기 사람이 있습니다.”
간디 앞에서는 정의와 평화를 기도하고, 부당하게 죽어간 당신의 국민을 외면하는 이유가 뭡니까. 간디의 ‘헤, 람’(오, 신이시여)은 경청하면서 ‘저기 사람이 있다’는 국민의 절규는 못 들은 척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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