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일본 변화의 시작이라는 기대를 받던 도쿄도지사 보궐선거는 결국 자민당의 지지를 받은 전 후생노동상 마스조에 요이치의 당선으로 끝났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극장정치, 호소카와 모리히로의 동맹정치, 우쓰노미야 겐지의 혁신정치가 탈원전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의 정치 연대를 통해 ‘선거 승리’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결과였다. 일본 시민 정치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 선거였다는 점에서 그 복잡한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왜 후보 단일화가 안 됐을까? 시민운동 진영은 탈원전 정책만이 아니라 아베 신조 정권의 군사국가화 및 신자유주의 정책의 저지라는 목표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탈원전과 동시에 반빈곤운동을 주도해온 우쓰노미야의 지지 세력은 양극화를 초래한 고이즈미, 신자유주의 및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호소카와를 용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악마의 손이라도 빌려서 탈원전 세력의 연대를 만들어야 하는 당위성은 있었지만, 호소카와는 철학적인 탈원전 구상 외에 다른 정책이 구체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았다. 시민운동 진영은 현실을 인식하고 깃발을 내리라는 그의 권위적 태도는 오히려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현장 운동 세력은 우쓰노미야 쪽으로 결집하고, 지식인들은 당선 가능성을 우선하며 호소카와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돌아서면서, 상호 대립과 갈등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들 사이의 신뢰 회복이 향후 시민운동 향방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투표 결과는 무엇을 말하는가? 호소카와(95만표)와 우쓰노미야(98만표)의 득표수 합계가 마스조에(211만표)를 넘지 못한 것은 탈원전 진영의 한계였다. 빈곤, 복지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도쿄도는 탈원전 정책만으로 시민들을 설득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우쓰노미야 진영도 도쿄올림픽을 반납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올림픽 특수를 기대하는 도민들의 경제성장 심리는 매우 강했다. 46.14%라는 저조한 투표율, 그리고 호소카와의 출마에 위기의식이 강했던 우쓰노미야의 혁신 진영이 오히려 지난 선거의 득표를 넘어 2위를 획득한 것은, 내면적으로는 시민운동 진영의 선전이라고 볼 수 있다.
젊은층은 진정 우경화하고 있는가? 아베 신조 총리 이상으로 ‘울트라 우익’을 대표하는 다모가미 도시오 전 자위대 항공막료장이 60여만표를 획득한 것에 <아사히신문>은 젊은층의 우경화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제 젊은 유권자는 거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아베 총리가 대변하는 보수적인 50~60대가 위기의식으로 다모가미를 지지했다고 할 수 있다. 젊은층의 우경화를 지적하기에 앞서, 전국적 노동 조직인 렌고의 도쿄위원회가 원전 재가동 압력을 가하기 위하여 마스조에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은 심각한 노동조합의 우경화를 의미한다. 탈원전 정책 반대의 중심 세력이 제조업과 대기업 중심의 정규직 노동조합이라는 점에서 일본 우경화의 본질은 50~60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를 기피하는 젊은층을 우경화의 장본인으로 매도하는 것은 무책임한 기성세대의 책임 회피다.
고이즈미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고이즈미와 호소카와 동맹을 지지한 오자와 이치로, 간 나오토 및 노다 요시히코 등은 자민당의 주류와 대립하고 있는 보수적인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아베 정권을 대체할 새로운 정계 개편을 내심 바라고 있다. 만약 미국이 폭주하는 아베 정권을 버린다면 일본의 정치는 어떻게 재편될까? 고이즈미의 움직임 속에는 이러한 고도의 정치 역학이 작동하고 있다고 보이면서도, 자신의 아들인 자민당 의원 고이즈미 신지로의 미래를 열어주겠다는 단순한 부정의 연장으로도 보인다.
한계는 있었지만 3·11 이후 탈원전 세력이 제도권 정치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사회민주당, 일본공산당, 녹색당, 신사회당과 시민 세력이 연대로 저항의 축을 어느 정도 형성한 것은 향후 중요한 토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의 사회적 토론과 경험이 전무하고, 진보정당의 제3축이 분열과 퇴조기에 있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도쿄도지사 선거를 통해서 일본 시민운동이 오랜만에 한국보다 한발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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