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숙제를 냈다. 시인이나 작가에게 편지를 써서 답장을 받으면 수행평가 점수로 인정하겠다고. 한 여학생이 나에게도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반가워서 짧게 답장을 보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같은 학교 학생들의 편지가 20통 넘게 도착했다. 모두 같은 반이었다.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집중포화를 맞은 것 같았다. 어린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서비스정신을 발휘해야지. 한 장의 편지지에 학생들 이름을 빠짐없이 쓰고, 딱 두 문장을 썼다. 편지 잘 받았어요. 고마워요. 그 후에 또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든 수십 통의 편지가 해일처럼 몰려왔다. 짜증이 났다. 나를 봉으로 여기는 거야? 나는 답장을 하지 않고 버텼다. 밤늦게 그 학교 학부모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우리 아이에게만 답을 하지 않느냐고 원성이 높았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분은 나하고 통화한 내용을 과제로 적어내도 되는지 물었다.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 오래전 일이다.
최근에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대전 대덕구에 사는 87살 장아무개 할머니와 서울 양천구의 60대 중반 황아무개 할아버지가 보냈다. ‘발견’을 읽고 복사를 해서 멀리 사는 친구에게도 보내신다고 했다. 두 분 모두 불의가 판치고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 개탄스럽다고 하셨다. 신문배달을 하며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보내고 빵집에서 만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편지를 공개하면서 답장으로 대신한다고 어르신들이 나무라지는 않겠지?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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