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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신뢰 프로세스가 펼쳐질 시공간 / 진징이

등록 2014-02-23 18:50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지금의 남북관계는 불협화음 속에서 협화음을 추출해내는 것 같다. 북한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열을 올릴 때 한국 일각에서는 여전히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가 거론된다.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합의를 할 때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가 한국 상공에서 타격 훈련을 했다.

한쪽에서는 이산가족들이 만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미 군사훈련이 진행됐다. 이산가족 상봉의 와중에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북한 인권 관련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남북관계에는 호재보다 악재가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금강산에서는 눈물의 이산가족 상봉이 몇년 만에 이뤄지고 있다. 북한은 이를 “통 큰 결단”이라고 한다. 한국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통했다고 한다. 이를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통상적인 패턴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북한의 말대로 “새로운 활로”로 봐야 할까?

새해 벽두부터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 공세를 펼쳐왔다. 최고지도자의 신년사에 이은 국방위원회의 중대제안, 진정성에 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남한을 향한 거듭된 견해 표명과 적극적인 회담 제안까지 모두가 북한으로선 극히 이례적이라 하겠다. 북한은 올해 남북관계 개선에 주력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한 것 같다.

북한은 지난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뒤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제재 탓에 사면초가에 빠졌다. 한국전쟁 뒤 초유의 전쟁위기까지 연출돼 북한은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다. 거기에 장성택 사건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자의든 타의든 출범한 지 오래지 않은 김정은 정권은 심히 어려운 대외환경에 직면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 뒤 사실상의 대내 개혁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거기에 북한은 내년 노동당 창건 70돌을 맞는다. 북한으로선 대축전이다. 올해와 내년의 가장 큰 정치행사다. 행사 결과는 김정은 체제 출범 4년에 대한 평가이기도 할 것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 대내외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의 주목표는 핵을 이용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었다. 북한은 핵은 보유했지만 많은 것을 잃었다. 북-미 관계는 이제 극도의 상호 불신임 탓에 대화의 징후조차 보이지 않는다. 미국도 북한도 피로감에 동력을 잃고 ‘포기’ 상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 북한에 실현 가능한 돌파구는 역시 한국일 것이다. 어찌 보면 ‘통남봉미’를 새로운 목표로 정한 것이 아닐까.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필수적일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와 같은 핵실험으로 야기되는 위기는 재현되지 않을 성싶다. 북한이 “통 큰 양보”를 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킨 데는 목표 실현을 위한 의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북한은 지속적으로 진정성과 신뢰를 보여주며 공을 부지런히 남한에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공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남한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부는 신뢰프로세스를 실천할 수 있는 시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뢰프로세스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부터 위기가 거듭되며 그간 운신의 폭이 좁았다.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극심한 고립무원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 외부로부터 계속 흔들림을 당하고 ‘악마화’돼 간다. 북한한테 3차 핵실험은 결정적인 악수였다. 그렇기에 오늘의 곤경은 강요된 면도 있지만 자초한 면도 있다. 북한은 핵만 포기하면 모든 것이 다 풀린다고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한·미에 대한 극도의 불신임과 안보 우려가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신뢰프로세스는 이 불신임과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북한은 중국의 1980년대에 버금가는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지금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너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도움’이 절실하다. 통일을 지향하는 남한은 이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쌀과 비료 지원 차원을 넘어 북한의 ‘변화 설계’에 함께 참여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앞에 펼쳐질 시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클 것이다.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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