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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창조성의 적’ 디지털 문명

등록 2014-02-27 19:25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시민편집인의 눈]
‘당신의 디지털 안녕하신가요’ 연중기획물은 가치 있는 시도
‘인간 창조성 산물이 정작 인간 상상력 저해’ 초점 놓쳐 아쉬워
<한겨레>가 야심찬 연중기획물을 선보였다. ‘당신의 디지털, 안녕하신가요’가 그것이다. ‘디지털 강국’ 한국은 디지털 문명을 선도하고 있다. 무릇 문명의 이기는 인간에게 안락, 편리성과 함께 뜻밖의 부작용과 폐해도 불러오는 법. ‘디지털 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집중 조명한 <한겨레>의 기획은 가치 있는 시도라고 평가할 만하다.

올 신년호에 첫선을 보인 시리즈는 한 달 남짓 동안 매회 두 쪽씩, 10회에 걸쳐 생활 속에 침투한 디지털 문명의 모습을 다양하게 추적 보도했다. 해외 현장 취재를 곁들여 ‘지구적 문제’에 대한 입체적 접근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시리즈는 아쉬움을 남겼다.

시리즈는 ‘중독’에 매몰돼 디지털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놓친 감이 있다. 디지털 문명에 대한 최대 쟁점을 빠뜨렸다. ‘인간 창조성의 산물인 디지털 문명이, 정작 인간의 상상력을 좀먹고 있다’는 논란이 그것이다. 디지털 문명은 ‘창조적 직관’과 ‘사색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터다. 생각하는 동물의 상상력은 ‘사색’과 ‘여백’에서만 나래를 펼 수 있다.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아무런 ‘생각’ 없이 과제를 해결하고, 대학교수들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논문을 손쉽게 표절하는 시대다. 디지털에 창조적 인류 문명의 ‘브레이크’가 숨겨져 있다는 통찰은 곱씹어 볼 대목이 아니겠는가.

12살 때까지 디지털 기기에 노출시키지 않는 실리콘밸리 학교, 발도르프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학교의 학부모 4분의 3이 정보통신업계에 종사한다. 그들이 느끼는 디지털의 위험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어떤 고민과 과학적 근거로 아이들 보호에 나섰을까. 디지털 문명에 숨겨진 ‘독소’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기사는 ‘기업들 교묘한 마케팅’을 주제로 삼은 1월24일치 일곱번째 시리즈에서 작은 보조상자로 처리됐을 뿐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 에스엔에스(SNS)의 눈부신 발전은 소통의 길을 무한히 넓혔지만 또다른 소외와 단절의 벽이 생성되면서 공동체의 파괴가 동시에 이뤄지는 아이러니도 디지털 문명의 숙제다.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기술과 영혼 없는 상혼의 합작극을 ‘사람의 눈’으로 차분하게 점검해 볼 시점이다. 핵심 주제를 놓침으로써 기획의도는 빛이 바랬다.

기획의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 디지털 문명이 빚어낸 다양한 세태,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 새로운 문명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기업의 상혼 등을 다뤘지만 일관된 기획의도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덴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보조상자들은 ‘친절’하게 다양한 구색을 갖췄지만, 그 내용은 도식적이었다. 기획 초점의 명확성, 집중력이 아쉬웠다.

시리즈를 이끈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디지털은 인류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디지털은 기술이지만, 기존에 등장했던 여느 기술보다 훨씬 강력하고 유혹적인 특성을 가진 것이 특성이다. 특히 스마트폰을 만나 ‘늘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된 채 살게 하면서는 그 기술의 변화가 개인과 인간관계 깊숙이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기술의 사용성에만 매혹되어 해당 기술이 인성과 관계에 대해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그다지 숙고하거나 성찰하지 않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유혹의 기술’로 아이들을 단숨에 사로잡고 있지만, ‘슬기로운 활용법’에 대한 연구는 더디다.

“디지털 기술은 너무 매혹적이고 강력한 기술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통제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게 특징이다. 특히 뇌가 성장기에 있고 자기통제력이 형성되는 중에 있는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에게는 각별한 교육과 사용 지도가 필요하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학습과 감시에 나서는 게 시급하다.”

-디지털 문명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연구·관리하는 국가기구, 법제의 정비 등이 필요한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디지털 기술 사랑은 유별나다. 새 기술을 성찰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무조건 빨리 받아들여 성장하고 보자는 문화가 풍미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와 학계, 언론계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그러나 섣부른 법제의 마련보다는 전문가와 사용자 집단, 여론이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벌이는 게 우선이다. 그 논의를 바탕으로 제도와 관행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창설 취지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성찰적 대안을 모색해서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탐구해나갈 계획이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활발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디지털 기술은 전기나 자동차보다 덜 위험하지도 않고, 성인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란 점에서 더욱 그 기술에 대한 이해와 연구 필요성이 크다고 본다. 이 문제에 공감하는 전문가들을 모아 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할 계획도 있다.”

-기획 방향이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 현상에 편중됐다. 그 중독이 가져올 후유증의 심각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중독이 가져오는 후유증 등 결과에 대해 조명하고 이를 객관적 데이터로 입증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지만, 이를 취재를 통해 확보하는 게 어려웠다. 특히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지 몇 해 되지 않아 그 중독의 결과를 입증한 연구가 거의 없는 상태다. 심층적인 취재를 통해, 각 현장에서의 경험과 목소리를 더 생생하게 전달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수박 겉핥기 느낌이 들었다. 해외취재 내용도 심층성이 미흡했다.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사전 준비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생생한 현장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인력과 물리적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

-후속 시리즈 기획 방향은?

“신년기획으로 시작한 ‘당신의 디지털, 안녕하신가요’ 1부에 이어, 3월에 2부를 시작할 예정이다. 1부에서 총론을 다루며 조망했다면, 2부에서는 캠페인으로 들어가 디지털 부작용과 그 대처에 관해 구체적인 사례와 노하우를 전달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을 동원해 디지털 고민상담 문답 코너와 디지털 기술의 구조 등을 함께 조명할 예정이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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