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최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가 2008년 공개시장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했다. 연준은 내부 지침에 따라 회의록을 5년마다 공개한다. 공개된 회의록을 보면, 연준이 당시 경제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인식을 하고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로 인해 7년 이상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다.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연준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 기구다. 의장이 임명한 연준 이사 7명이 위원으로 참여하는데,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이들의 임기는 14년이나 된다. 여기에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참여한다.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사실상 개별 은행 차원에서 선임된다. 이들 12명 모두 공개시장위원회 토론에 참여하지만, 실제 표결권은 5명에게만 번갈아 주어진다.
이번에 공개된 회의록은 이미 경기가 침체기로 접어들고, 금융시장 혼란이 시작된 무렵부터 시작된다. 2008년 3월엔 미국 5대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인 베어스턴스가 파산 위기에 직면해 연준이 긴급 지원에 나서야 했다. 또 9월엔 정부 출자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 만에 또다른 주요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적 금융위기가 본격화했다.
그럼에도 공개시장위원회는 말 그대로 금융위기가 본격화할 때까지도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이 직면한 위험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위원회 내부에선 2008년 8월까지도 집값 거품 붕괴가 금융 및 경제 전반에 끼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만큼이나 금리 인하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도 컸다.(그나마 당시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였던 재닛 옐런 신임 연준 의장은 주택값 거품 붕괴의 후폭풍을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연준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들이 위기 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집값 거품 붕괴가 경제 전반과 금융시장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건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이미 2007년 말에 이르면 집값 폭락으로 미국 경제가 잃어버린 자산 가치는 한달에 3천억달러에 이르렀다. 자산 가치 축소는 소비에도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폭락하는 집값이 금융시장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것이란 점은 누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당시 집값 폭등세를 부른 주범은 계약금을 대폭 깎거나 아예 전혀 받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이뤄진 주택담보대출이다. 그런데 거품이 터지면서 대부분의 집값이 30~40%씩 폭락했다. 결국 주택 소유주들은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다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리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대출금이 집값보다 많은 이른바 ‘깡통주택’은 채무 불이행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실제 당시 수많은 깡통주택 소유주들이 상환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주요 은행과 패니메이·프레디맥 등 모기지 업체가 주택담보채권을 이용해 막대한 투자를 한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럼에도 연준 최고위층은 미국 경제의 심각성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인식을 하지 못한 것이다. 회의록을 보면, 공개시장위원회는 2008년 6월이 돼서야 주택 공실률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했다. 주택시장에 닥친 재난적 상황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공실률이다. 집값 거품으로 터무니없이 많은 주택이 건설됐고, 이로 인해 거품 이전 시기에 견줘 임대와 매매 모두 공실률이 50% 이상 높아진 상태였다. 공실률이 높다 보니 주택값 폭락세는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경제 위기 이후 벌써 5년 이상이 흘렀다. 집값 거품 붕괴가 위기를 부른 주요 원인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것만으론 경제 위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이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위기의 원인을 설명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경제학자들의 고용을 늘리는 데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쓸데없이 전세계에 파괴적인 경제 위기를 몰고 온 경제학자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걸 피하는 데도 더없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경제정책을 세우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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