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삼가 애도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지난 일요일에는 “업무 스트레스 교사 학교 옥상서 목매”라는 뉴스를, 금요일에는 마지막까지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담아 두고 떠난 세 모녀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전주 금요일엔 연구비 횡령 혐의로 검찰에 불려간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지는 자살 소식을 접하며 글 쓰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이들은 누구이며, 벼랑 끝에 있는 그들의 손을 잡지 않은 이웃은 또 누구인가? 그 벼랑 끝에 있는 이의 손을 잡기는커녕 그를 밀어버린 이는 또 누구일까?
건축가 승효상씨는 지난달 21일 제주 바다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종호 교수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아래의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이종호. 그는 나보다 다섯 살이 적지만 범접하지 못할 생각과 태도로 모든 이가 경외하는 건축가이다. 현대건축의 거두였던 김수근 선생의 마지막 제자로 선생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유학 한번 가지 않았지만 지독한 독서와 폭넓은 지적 교류를 통해 누구보다 건축에, 사회에, 역사에 정통하고 우리의 삶을 늘 깊게 사유했다. 이 땅의 풍경과 사연들을 가슴으로 안아 건축으로 만드는 일에 탁월하다. 특히 건축이 지녀야 할 공공적 가치에 지극한 관심이 있었다. 건축설계도 공공의 이익 도모가 늘 우선순위이며 그런 건축을 통해 탐욕으로 일그러진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소망해왔다. 출세와 재물은 그의 사고범주에 없는 단어였다.” 그는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법 없이 살아갈 분이 왜 스스로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최근 대학은 대형 연구 프로젝트 수행기관이 됐다. 교수들은 돈을 타내기 위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결산을 하느라 정작 해야 할 연구를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나 같은 ‘영리한’ 사람은 일찌감치 대형 연구 프로젝트를 피해왔지만 모범생 교수들은 학교와 제자들을 위해 이를 군말없이 맡았다. 이종호 교수 역시 연구소 일을 맡아 고단한 삶을 감내해왔던 터였는데 지난해 말 감사원은 5000여만원의 회계오류를 들어 대학 당국에 그의 징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의 됨됨이를 아는 대학 본부는 부당함을 소명해 감사원에서 재심사를 하기로 조정한 터였다. 그런데 지난달 18일 검찰은 “허위 인건비 등을 청구하는 수법으로 10억원대 금품을 가로챈 사기 혐의”로 이 교수를 소환해 심의했고, 사전구속영장이 날아온 날 그는 뱃길에 올라 홀연히 밤바다에 몸을 던진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변호인에게 확인한 결과 이 교수가 수사 과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거나 불만을 토로한 사실은 없었다고 했다”며 “검찰 자체 파악으로도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했다. 검찰은 수사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이 교수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하고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낼 일일까? 이 교수의 죽음을 두고 많은 이들은 <모래시계>를 만든 한국 드라마의 거목 김종학 피디를 떠올렸다. 그 역시 횡령 혐의로 검찰에 불려다니다 목숨을 끊었다. “김○○씨죠? 대검찰청 ○○○ 검사입니다”로 시작하는 보이스피싱의 첫마디는 선량한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말이다. 신뢰와 존경의 물에서 살던 이에게 적대와 의심에 찬 모멸적인 말 한마디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아주 많이 변했고 사람들의 결도 달라졌다. 당연히 연구지원 방식도, 검찰의 심문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연구비 지원은 ‘감시와 처벌’이 아닌 ‘신뢰와 환대’의 원리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벼랑 끝에 선 이를 밀쳐버릴 위험성을 지닌 검찰이나 언론계 종사자들은 누구보다 정의의 감각과 함께, 인간에 대한 민감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고도의 정보관리체계를 갖춘 이 살벌한 체제가 이대로 간다면 업무 스트레스와 제도 권력의 횡포로 인한 비극은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어설픈 복지 행정은 서로를 돌보는 마음마저 앗아가고 있지 않은가? 법 없이도 살아갈 분들을 떠나보내며 흉흉한 마음 달랠 길 없다. 사회적 타살, 이제 책임을 묻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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