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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잃어버린 마을 후쿠시마와 강정에서 / 이영채

등록 2014-03-16 18:42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3월7~9일 일본 시민 20여명과 제주도 평화기행을 했다. 4·3사건의 현장, 일본군 관련 시설들, 해군기지 건설이 진행되는 강정마을을 방문하였다. 한류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가진 평범한 시민들이지만 방문한 곳마다 아픈 한국 현대사와 그 배경에 깔린 일본 식민지의 유산을 인식하면서 무거운 침묵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특히 강정마을에서는 주민들에게 일절 설명도 없이 해군기지 건설이 결정되었다는 사실, 700여명이 연행당하는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60% 이상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일본인들은 나리타국제공항 건설을 반대한 산리즈카 주민들의 처절한 저항 운동을 연상하기도 하였다.

강정마을 부녀회장이 “강정은 아픕니다. 너무 아픔이 깊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대장금>의 촬영지, 관광지로 알고 온 일본인들에게 강정은 현재진행형인 4·3사건의 ‘잃어버린 마을’과 같았다. 하지만 이들이 강정마을에서 아픔을 느낀 것은 이곳의 현실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타국 제주에서 일본의 잔영을, 그리고 강정마을에서 슬픈 자화상이고 잃어버린 또 하나의 마을인 후쿠시마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3월10일 현재 일본 경시청 및 부흥청 자료를 보면, 3·11 사태(지진, 쓰나미, 원전 붕괴) 이후 3개 현(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에서 사망자 1만5884명, 행방불명자 2633명, 피난자는 약 27만명에 이른다. 피난 생활에 의한 건강 악화와 자살에 따른 사망자는 2973명으로, 후쿠시마현의 경우 지진 및 쓰나미 사망자 수를 앞섰다. 3개 현에 재해공영주택 2347호를 공급하기로 계획했지만 실행률은 9%밖에 안 된다. 이외에도 인구 유출, 사업장 이전, 심리 치료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동일본 대지진의 전체 피해 지역은 해변 길이 500㎞, 내륙 폭 200㎞의 거대한 면적에 이른다. 한편, 후쿠시마현의 경우 방사능으로 인해 복구를 위한 접근이 일절 불가능한 지역이 많고, 2~4호기 원전의 통제 및 오염수 관리, 오염 제거 작업, 보상 문제 등은 구체적인 정보가 일절 공개되지 않은 채 유동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이를 고려하면, 일본 정부는 3·11 사태는 사실상 처음부터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조기에 후쿠시마를 격리 조처하며 수습 완료를 선언해서, 미디어에서 서서히 배제하는 방식의 해결 방법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한편 일본 시민사회는 3·11 사태의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고 ‘탈원전 성장’이라는 어렵고 험한 길을 선택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진실 규명, 고통 분담 및 재생에너지의 길을 외면한 채 안보 강화와 경제성장을 내세운 아베 내각 및 보수적 정치가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유혹과 타협했다고 할 수 있다.

전후 동아시아 국가 건설에서 어느 나라한테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 정책과 에너지 확보였다. 일본의 경우 안보 문제는 오키나와, 에너지 문제는 후쿠시마에 희생을 강요하면서 도쿄 지역 등 대도시의 안전과 번영을 꾀하였다. 도쿄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이것을 <희생의 시스템>(2012년)으로 개념화했다. 한국에 적용하면 안보 문제는 평택 및 강정 등 군사기지 지역, 에너지는 밀양 및 해안 원전 지역 등에 해당한다. 서울 등 대도시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서 한국 또한 수많은 희생의 지역들을 양산해 왔으며, 이 지역들은 동시에 양국의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한 ‘잃어버린 마을’들로 변모해 왔다.

제주도 평화기행에 참여한 일본인들이 언제 서로 의견을 나누었는지 마지막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노란 봉투 캠페인’에 참여하기로 하고 1인당 4만7천원을 넣은 봉투들을 모아주었다. 한국 사회의 아픔을 공유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뉴스만 보면 일본은 희망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다가도 이런 일본인들 속에 있으면 새로운 희망을 느끼곤 한다. 3·11 사태 3년을 맞이하며 우리는 후쿠시마의 방사능 공포는 강조해 왔지만, 국경 너머 후쿠시마 주민들의 아픔을 얼마나 진심으로 공유해 왔을까? 후쿠시마의 아픔을 공유하기에 앞서 우리는 강정마을의 아픔을 벌써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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