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국경선은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국경선이 무력에 의해 변경돼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국제체제의 핵심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제체제는 국경선의 변화에 반대해왔다.
물론, 1945년 이후 세계 지도는 종종 꽤 극적으로 바뀌었다. 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에서 식민주의 종식으로 많은 새로운 국가와 몇몇 새로운 국경선이 생겨났다. 방글라데시와 에리트레아, 동티모르, 남수단에서 보는 것처럼 독립운동이 국경선의 변화를 초래한 경우도 자주 있다.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같은 다인종 연방국가의 해체도 국경선의 변화를 초래했다.
그러나 크림반도에서 벌어진 일은 매우 다르다. 최근까지도 우크라이나의 일부였던 크림반도에 러시아 군대가 진주해 이 지역을 장악했다. 우크라이나 임시정부는 이 위기 동안 놀랄 만한 자제력을 보였다. 크림반도에 있는 자국 군대한테 러시아 군과 싸우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오는 5월 다가오는 자신들의 선거와 함께, 러시아가 다른 국경선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군대를 파견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러시아 소수민족을 보호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움직임을 규탄하고 크림자치공화국의 3월 선거 결과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시리아·베네수엘라·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고는 러시아를 따르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고, 세계는 외교적 해법을 기다리고 있다.
동북아시아는 언뜻 보기에는 크림반도 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1953년 이후 이 지역에서 국경선은 바뀌지 않았다. 홍콩과 마카오의 중국 반환만이 지도를 바꿨을 뿐이다.
그러나 물밑에서 동북아는 많은 영유권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은 여전히 쿠릴열도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독도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를 두고도 한-일, 중-일이 갈등을 하고 있다. 남북한은 서해 해상경계선을 두고 수십년간 저강도 충돌을 벌여왔다. 중국과 대만이 지금은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을지라도 막강한 두 군대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개입했을 때 중국의 대응에 관심이 쏠렸다. 지금까지 중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크림 주민투표 무효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졌을 때 기권했다. 중국은 러시아는 물론 서방 국가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물론 중국은 대만과의 갈등은 말할 것도 없이 티베트와 신장 등 여러 독립운동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이런 이슈들에 다른 나라들이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동시에 강렬한 민족주의가 중국인들에게 퍼지고 있다. 러시아의 행동의 결과로서, 일본·대만·동중국해 등에서 무력으로 국경선을 변경하라는 압력이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가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신중한 권력이다. 크림반도에서의 러시아와 달리, 중국이 군사적 개입을 선택한다면 중국은 상당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자국의 경제적 지위와 다른 나라와의 무역 관계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은 하기를 꺼려왔다.
북한은 유엔총회의 우크라이나 결의안에서 러시아 편을 든 11개국 중 하나다. 북한이 미국의 개입에 대한 러시아의 비난에 찬성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우크라이나 위기를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또 아마도 우크라이나에 쏠린 국제사회의 관심의 일부라도 돌려보고자 여러 미사일 시험을 했다.
대서양에서 냉전의 회귀는 냉전이 실제로 끝나지 않은 동북아에 좋은 전조가 되지 못한다. 북한과의 안보 틀을 협상하려는 역내 노력도 미-러 다툼이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중·러와 북한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고화와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의 동맹 강화 노력에 직면해 더 긴밀히 공조하는 것이 그들한테 최선의 이익이라고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고립화는 북한의 고립감을 덜 것이고 북한은 약자의 위치에서 협상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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