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3월 말 베이징에서 북-일 국장급 회담이 열렸다. 제재와 대화에 의한 대북정책을 표방한 아베 정권이 대화국면으로 전환을 한 것이다. 2002년 10월 고이즈미 전 총리의 방북 이후 북-일 사이에 10년 이상 대사급 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 민주당 집권 말기인 2012년 11월 실무자 회담이 재개되었으나 정권교체로 중단되었다. 아베 정권 등장 후 1년4개월 만에 북-일 교섭이 재개된 것이다. 두 나라 보수 원조들의 첫 만남이라는 데서 역대 북-일 회담과는 의미가 다르다. 대박이 될 것인가 쪽박이 될 것인가 긴장되는 국면이다.
왜 지금 북-일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전후 북-일 관계는 크게 네 차례 국교정상화 기회가 있었다. 1955년 평화 공존, 1970년 미-중 화해, 1990년 냉전 붕괴, 2001년 9·11 테러 이후의 시기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일 접근은 급변하는 국제 및 지역정세의 변화, 즉 외압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였다. 하지만 이번 북-일 접근은 이런 외압적인 정세변화의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북-일 관계는 북-미 및 남북 관계의 종속변수로 인식되어온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 방북 이후, 특히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가 전면화되면서 북-미 및 남북 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변수의 측면이 강해졌다. 고이즈미 총리의 2004년 5월 제2차 방북은 그해 7월 참의원 선거 직전에 납치 생존자 5명을 데리고 귀국하는 퍼포먼스로 이어지면서 국내정치 요소가 북-일 접근의 추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최근의 북-일 접근은 국제정세의 큰 변화보다는 지역정세 및 국내정치적 요소의 작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김정은 정권과 아베 정권의 불안정한 국내정치 기반이 두 극단적인 적대세력의 접근을 가져온 것이다. 결국 고립이 적과의 동침을 만들고 있다.
북한의 경우, 지난 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기반을 강화하는 대폭적인 인사개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고령의 김영남을 비롯해 혁명 1세대가 그대로 유임되는 등 소폭의 인사가 단행되었다. 특히 주목받았던 고모 김경희는 대의원 및 경공업담당비서에서도 제명당한 것으로 보여 백두혈통 내의 분열 현상도 보인다.
결국 김정은 신체제는 장성택 중심의 실용적인 경제관료세력과 김경희 중심의 백두혈통세력의 곁가지의 동시제거로 인한 권력공백을 혁명 1세대의 후광으로 메우고 있는 불안정 속의 안정 구도가 되고 있다. 하지만 집권 2년간 중국 방문을 못했고, 남북관계 또한 도발에 비해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오는 7월 김일성 주석 20주기를 맞이하여 대내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쇄신하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목적의 북-일 접근 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베 내각은 북핵 및 일본인 납치 문제는 한-미-일 공조를 통한 해결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독도영유권 및 역사 문제, 센카쿠 문제로 한-일 및 중-일의 외교갈등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섣부른 야스쿠니 참배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였다. 2014년에 접어들어 아베노믹스의 한계가 보이고 있으며, 4월1일자로 시작된 소비세 8% 인상은 아베 불황의 시대마저 예고하고 있다. 헌법 9조 개정은 사실상 물건너갔으며, 집단적 자위권만이라도 성립시켜야 하는 초조함이 역력하다. 집단적 자위권 처리를 강행하고 여론의 반발을 돌려세울 전격적인 방북 카드를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일 회담의 진전에 한국의 심기는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북-일 당사자 간의 멋쩍은 회담을 한국이 주선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결국 북한의 경제회복을 한국의 독자적인 경제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의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은 통일 대박의 중요한 요소다. 김대중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김정일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김정은 제1비서와의 3자 공동회담을 제안하는 전략적인 전환이야말로 통일 대박의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한국과 일본과 북한의 국민은 쪽박을 차고 있으면서 대박의 꿈만 선동하는 지도자보다 협력을 통해 진정한 대박을 만드는 대정치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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