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국제부장
42살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요즘 한창 뜨는 스타다. 그의 책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21st Century)은 지난해 말 프랑스에서 출판된 뒤 지난달 미국에서 영어판이 나왔는데, 그야말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수십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책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잇는 이 책은 자본주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현재의 지독한 불평등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 300여년간의 세금 자료 등을 분석해, 상위 1%가 점점 더 많은 부를 독점하게 되는 심각한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특성임을 증명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적 모순”은 자본을 가진 이들의 투자수익은 소득과 생산 증가율보다 항상 크다는 점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동을 해서 벌어들이는 수입도 돈으로 돈을 버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자본을 가진 소수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불평등은 계속 커진다는 거다.
그의 분석 결과, 자본주의 역사에서 1차대전 무렵부터 1970년대 초까지 약 60년은 예외적으로 덜 불평등한 시기였다.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으로 부자들도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정부가 소득과 부의 재분배에 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시장 우위의 사회로 돌아가자 불평등은 극심해졌고, 현재 세계는 ‘세습 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이다. 상속받은 자본을 손에 쥔 운 좋은 슈퍼리치들은 부를 독점할 뿐 아니라,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낸다. 임금 불평등도 심각해지면서, 1970년대 초 이후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상위 1%의 임금은 165% 올랐고 최상위 0.1%의 임금은 362% 올랐다.
대공황 전야와 같은 현재 위기 상황의 해법으로 피케티는 전세계적 총자산세를 제안한다. 토지, 천연자원, 주택, 사무실, 공장, 소프트웨어, 특허, 주식과 채권을 비롯한 금융자산까지 부유층의 자산 전체에 매년 최고 5~10%까지 세금을 부과하자는 거다. 아울러 부유층의 소득에 70%까지 누진적 부유세를 물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피케티는 특히 부유층 자산세는 반드시 전세계가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산을 조세회피처나 세금이 낮은 곳으로 빼돌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최근 한국에서도 재벌 총수와 임원 등 한국 슈퍼리치들의 연봉이 화제가 됐다. 한 회장님의 연봉 300억원을 벌려면, 올해의 최저임금인 시간당 5210원을 받는 노동자는 2315년(월 209시간 근무 기준)을 죽어라 일해야 한다고 한다. 2005~2010년 가계소득은 1.6배 증가에 그쳤지만, 기업소득은 19.1배 급증했다. 내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는데, 노동계는 시급 6700원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재계는 기업에 타격이 된다며 반대한다.
지금 세계 각국은 노동자 임금을 올리고 과도한 불평등을 줄이려는 시도에 나서고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0.1달러로 올리려는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세수 부족을 핑계로 복지와 분배의 약속들을 뒤집고 있다.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대신 서민들로부터 세금을 더 받아내느라 바쁘다. 서민들이 더 많은 빚을 져서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도록 독촉한다.
1% 슈퍼리치들에 대한 중과세가 이상한 공상일까? 이런 불평등이 더 초현실적인 풍경일까? 피케티의 주장대로 한국 슈퍼리치들의 소득과 자산에 높은 세금을 매겨 이 돈을 복지나 일자리 창출, 사회적기업 지원 등에 쓴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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