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썰물 때 형체를 드러냈다가 밀물 때면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를 ‘여’라고 한다. 바닷가에서는 흔히 쓰지만 육지에서는 꽤나 낯선 말이다. 배를 타고 육지에 접근할 때 이 암초와 같은 여를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뱃사람들은 보통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여’를 잘 기억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나희덕의 시 ‘여, 라는 말’을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아프다.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 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 그것을 섬이라고도 할 수 없어 여, 라 불렀다/ 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 검은여…” 시인은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 기억과 망각 사이에, 실체와 허상 사이에 육지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여’가 있다고 말한다. “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 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 물에 영영 잠겨버렸을지도 모를 기억을/ 햇빛에 널어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만/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바위,/ 썰물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그 바위를 향해서도 여, 라 불렀을 것이다” 흔히 주의를 한곳에 집중시킬 때 ‘여’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여기’라는 뜻도 있다. 시인의 노래를 마저 듣자. “그러니 여가 드러난 것은/ 썰물 때가 되어서만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 물에 잠긴 여 주변을 낮게 맴돌며/ 날개를 퍼덕이던 새들 때문이다/ 그 젖은 날개에서 여, 라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여기라는 말이 자꾸 들린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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