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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세월호는 ‘범죄현장’이다

등록 2014-04-29 19:06수정 2018-05-11 15:16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지난 열흘 동안 나는 비겁했다.

진도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애써 외면했고 도망가려 했다.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기울어진 선실 속에서 앗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어린 학생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웠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을 상상하는 게 공포였다. 다리가 후들거려 어느 자리에서든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싶어져서였다.

처음 이틀 동안은 모든 일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 기대했다. 군대 민간 경찰 헬기 잠수함 상선 어선과 온갖 최첨단 장비들과 손도끼 절단기 등 무엇이든 한꺼번에 동원되어 하나둘씩 승객들이 구출되리라 생각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인데 대한민국이 그 정도의 기술이나 전문인력 구조능력이 없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사고 지점의 특수성이나 날씨 등에 대한 과학적 소견이 없는 무식의 소치인지도 모른다. 국민들의 애타는 응원과 구조요원들의 천신만고 노력 끝에 승객들은 구조되고 수학여행으로 한껏 들떠 있던 학생들은 가족들과 얼싸안고 방방 뛰며 부모와 친구들에게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선실 속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려주길 기다렸다.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다음은…… 유구무언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 전부가 고아가 된 느낌이 든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국가의 선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팬티 바람으로 선장이 빠져나간 세월호에 우리 모두가 타고 있는 것처럼 두렵다. 대한민국이라는 조직이 우산처럼 받치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 여겼는데 우산이 완전히 뒤집혀 날아간 것 같은 패닉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미 끝난 상황이라는 전제에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겠다는 의지가 어디에도 없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고 휴대전화에 구조신호를 보내고 영상을 보내고 대답 없는 카톡을 보내고 있는데 모든 일이 속수무책이고 갈팡질팡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나씩 드러나는 정황을 보면 세월호 사고는 사고가 아니라 범죄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 자체가 범죄공간 같다. 사고 수습 과정마저도 수십년 계속되어온 비리 협잡 봐주기 결탁 부패의 고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세월호는 수백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살해의 현장이다. 지진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다. 매뉴얼이 있으면 규칙과 원칙이 있으면 무엇하나. 서로 좋은 게 좋다고 봐주고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세상인데… 공무원과 관계기관들이 국민을 지켜주는 대신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을 지켜주고 있는데… 불의나 부정에 눈감고 따지지 않고 바로잡으려 애쓰지 않은 그런 관행에서 우리 모두 벗어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모두 공범자들이었다.

세월호는 딴 곳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폭파도 안 된다. 범죄 현장을 없애면 안 된다. 어떻게든 배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 한명까지 찾아내고 그다음엔 길이 잊지 않게 그 자리에 영원히 세워놓았으면 좋겠다. 부패의 산 교육의 장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원인을 규명하고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겠다는 의지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기껏 선장이나 승무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했다. 진심이었길 바란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이런 참혹하고 비통한 상황에서 어찌 진심의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임을 통감한다면 세월호로 대표되는 비리집단의 연결고리를 끊게 하고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회사 이름 바꾸고 다시 세상에 나오고 막대한 연결고리와 돈을 동원하고 유력한 변호사를 써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세월호로 대표되는 집단과 그 뒷배를 봐주었던 무리들을 임기 내에 샅샅이 찾아내 추궁하고 벌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내세도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요즘 그걸 믿고 싶어진다. 어디선가 이승이든 저승이든 만나게 되면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며 손잡고 같이 울어주고 싶다. 그래 아팠지 무서웠지 힘들었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실종자 사망자 가족 여러분… 여러분 각자의 비통하고 애절한 사연에 귀 기울이고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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