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중년들 사이에 꽤 널리 알려진 노래가 있다. 조영남이 부르는 ‘모란동백’이 바로 그것. 이 노래를 소설가 이제하 선생이 작사·작곡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98년에 나온 시집 <빈 들판>(나무생각)의 초판에는 덤으로 시디가 한 장 끼여 있었는데, 여기에 ‘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노래였다. ‘모란동백’은 역시 이 음반으로 들어야 제맛이다. 1937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해 마산에서 성장한 경상도 출신의 피해갈 수 없는 독특한 억양 때문이다. 선생의 기타 반주 하나로 듣는 노래 가사가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퍼라 나 어너 변방에 뜨돌다 뜨돌다 어너 나무 그널에 고요히 고요히 잠던다 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이제하 선생이 고등학교 때 쓴 학원문학상 당선작 ‘청솔 그늘에 앉아’는 발표 당시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볕 깔린/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고 해도 좋아/ 당신의 깨끗한 손을 잡고/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이 시에 가슴 울렁이던 세대들은 어느덧 칠십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선생은 여전히 ‘청춘’이다. 그의 소설에 깔려 있는 회화적인 이미지의 삼삼한 매력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다. 평생 예술계의 변방에 있고자 하는 선생이 실은 나무의 체관부 같은 중심이 아니던가.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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