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작은 저개발국들은 갑자기 유전이나 금광을 발견하지 않는 한 국제무대에서 열위에 처진다. 그들이 규칙대로 한다면 계속 저개발국으로 남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에 제3세계 국가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은 예외 중 하나다. 한국은 행운과 투지, 그리고 규칙을 깨려는 의지로 개발 격차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미군을 지원하는 회사들에 많은 사업 기회를 제공한 베트남전 때 한국의 전략적인 위치는 행운이었다.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고자 많은 희생을 감수한 한 세대의 투지로 한국은 농부들의 나라에서 엔지니어·박사·변호사들의 나라로 바뀌었다.
규칙을 깨려는 의지는 가장 논쟁적이다. 1960~70년대 권위주의 정부는 원재료 수출이라는 당시 비교우위에 만족하지 않았다. 대신에 규칙대로 했다면 외국에서 수입했어야 할 상품 생산 분야에 전략적인 투자를 했다. 이런 식으로 한국은 철강과 자동차, 조선업을 일궜고 글로벌 리더가 되었다.
북한은 자신의 방식대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코메콘으로 알려진 소련 주도 경제 협력체에 종속된 지위에 있기를 거부했다. 대신에 북한은 자체 제조 역량을 키우는 방식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규칙을 깼다. 그러나 국제 자본주의로부터 고립된 북한은 독자적 노력으로 진전을 이룰 수가 없었고 1970년대 이후 경제가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은 규칙을 깨고 세계 최강국들과 동등하게 되는 다른 길을 발견했다. 재래식 무기에 충분한 자금을 배분할 수 없었던 북한은 더 값싼 대안, 즉 핵무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것을 하기 위해 북한은 국제 규칙을 위반하고 미국에 도전해야 했다.
비슷한 길을 시도했던 다른 정권들-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은 실패한 반면에, 북한은 적어도 하나의 관점에서는 전략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경제가 여전히 매우 좋지 않고 상당한 제재를 당하고 있을지라도 정치체제는 고스란히 3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남한과 북한의 처지는 매우 다르다. 북한은 따돌림받는 국가이고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중국조차 의심스럽게 보고 있다. 반면에 남한은 세계경제에 통합되고 다양한 안보관계를 맺고 있다.
규칙 어기기의 부정적 결과는 북한에서 분명하다. 정권은 생존하고 있으나 국민들을 희생하고 있다. 남한의 규칙 어기기의 부정적 결과는 조금 더 자세한 조사를 필요로 한다.
예컨대, 한 세대 만에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남한의 야망은 절차 또는 원칙을 무시하는 지름길을 필요로 했고, 그런 지름길은 때때로 치명적이었다. 건설과 관련된 재앙이 흔하게 발생했다. 1970년대 와우 아파트, 1994년 성수대교, 그리고 1995년 삼풍백화점이 그런 예다. 이 재앙들은 절차나 원칙을 무시하는 건설 회사들에 의해 유발됐다. 세월호 참사 사건은 안전 규정이라는 규칙에 부주의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 때문에 전 사회를 기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여러 측면에서, 남북한은 자유분방한 미국보다 더 규칙에 얽매인 사회다. 그러나 좋든 나쁘든 남북한은 게임의 규칙이 권력층들에게 우호적으로 조작돼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도전 과제는 규칙 어기기를 무법자 명성보다는 합법적 지위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규칙 어기기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사용되는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 남한은 이제 세계경제에서 규칙 준수자가 되었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과 평화조약, 안보 보장, 경제개발 지원을 맞바꾼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큰 도전 과제가 여전히 보인다. 국제적인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시기에, 남북한은 함께 규칙을 깨고 두 나라 간 거대한 경제·정치·사회적 격차를 극복할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동·서독에 의해 확립된 것처럼 더 강력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흡수하는 게 규칙이다. 남북한이 북한의 보통 사람들을 남한 사람들처럼 행동하도록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의 기여와 관점을 존중하는 보다 평등한 방식으로 나라를 통일한다면, 두 나라는 상호 규칙 어기기 전통을 한반도 전체를 위한 정당성의 새로운 원천으로 전환시킬 것이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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