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국제부장
2008년 5월12일 오후 2시28분, 쓰촨성 원촨에서 일어난 리히터 규모 8.0의 강진이 중국을 뒤흔들었다. 마을들은 참혹한 폐허로 변했고 사망·실종자는 9만명에 이르렀다.
지진 발생 2시간12분 뒤인 오후 4시40분 원자바오 총리가 피해지역으로 출발했다. 원 총리는 비행기 안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구조지휘본부를 구성한 데 이어 생존자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초기 88시간 동안 피해지역을 떠나지 않고 구조작업을 총지휘했다.
당시 66살의 원 총리는 확성기를 들고 땀과 눈물을 흘리며 목이 쉬도록 구조작업을 이끌었다. 여진과 무너진 도로, 비바람을 뚫고 험준한 산악지대 곳곳을 다니며 “1초라도 빨리 도착해야 한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 100배의 노력을 기울여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라”고 독려했다. 무너진 건물 아래서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를 보고 그가 허리를 굽히고 눈물을 흘리며 “나는 원자바오 할아버지야, 얘야 힘내야 돼. 꼭 구조될 거야”라고 위로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며 많은 중국인들이 울었다.
2014년 4월16일 아침 진도 앞바다. 기울어가던 세월호 안에서 구조대가 왔다고 안도하며 엄마 아빠에게 “곧 구조될 거야” “사랑해” 메시지를 보낸 아이들. 구조할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그런 아이들을 한명도 살리지 못한 정부, “우리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청와대….
맘 아프고 속상해서 6년 전 중국 쓰촨대지진 구조 화면을 찾아보다가 정말 묻고 싶어진다. 세월호 침몰 뒤 88시간 동안 대통령이나 총리가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지휘했다면 지금 상황은 어땠을까? 울고 또 울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책임을 떠넘기고 색깔론으로 유가족과 추모 행렬을 옭아매려는 이들을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
중국 대지진에는 다른 교훈도 있었다. 당시 ‘두부 건물’로 불린 부실한 학교건물들이 한꺼번에 붕괴돼 수업하던 아이들이 5000명 넘게 건물더미에 깔려 숨졌다. 관리들이 뇌물을 받고 규격 미달의 건축자재를 쓰거나 철근이나 시멘트를 제대로 쓰지 않고 건축비를 착복해 건물들이 지진에 두부처럼 무너져 내렸다.
지진은 중국의 초고속 성장 과정에서 번성한 탐욕스런 황금만능주의, 인간을 해치고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삶의 방식, 파렴치한 부패사슬을 폭로했다. ‘두부 건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운동가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지진 6년을 맞은 12일에도 중국 인터넷에선 ‘지진은 자연재해였지만, 아이들의 죽음은 인재였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런 비판과 감시의 노력들이 모여 중국을 바꿔나가고 있다.
20세기 초 작가 루쉰은 온갖 모순이 가득하지만 사람들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 사회를 ‘쇠로 만든 방’에 비유했다. <광인일기>에서 그는 예교와 질서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희생시키고 탐욕 속에서 약자를 억압해온 중국 사회는 “사천년간 내내 사람을 먹어온 사회”라 탄식하면서, 그런 악행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을 구하라”고 외친다. 대지진이 중국 사회를 깨운 것처럼,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한국 사회가 ‘쇠로 만든 방’이며 탐욕이 인간을 먹어치워 버린 ‘식인의 사회’임을 깨닫고 있다. 우리가 침묵하는 동안 무능한 괴물이 되어버린 국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 손을 잡고 분향소를 찾는 엄마 아빠들, 촛불을 든 학생들의 ‘가만히 있지 않겠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식인의 사회를 거부하고 인간의 미래를 만들겠다는 간절한 희망이다.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정부가 희망의 싹마저 불순세력이란 딱지를 붙여 잘라내려는 파렴치함만은 용납하지 말자. 절대로.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