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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이타적 투표 2 / 박용현

등록 2014-06-01 18:14수정 2014-06-01 18:14

박용현 탐사기획에디터 <A href="mailto:piao@hani.co.kr">piao@hani.co.kr</A>
박용현 탐사기획에디터 piao@hani.co.kr
한 표의 가치는 모두 동등하다는 게 상식이지만, 달리 설명하는 이론도 있다. 한 표의 가치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가능성·P) 곱하기 ‘원하는 선거 결과가 나왔을 때 얻는 혜택의 크기’(혜택·B)라는 것이다. 이 중 가능성 P는 ‘1/전체 유권자 수’로, 모두가 동일하다. 그런데 혜택 B의 값은 변동이 가능하다.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따져 투표할 경우 ‘1인분의 혜택’에 그치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 투표할 경우 혜택 B의 값은 그 타인들의 수만큼 불어난다. 결국 곱셈 결과는 커진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썼던 글 ‘이타적 투표’(<한겨레> 2012년 10월22일치 35면)를 길게 되풀이하는 이유는 시절 탓이다. ‘세월호’의 상처가 짓무르고 덧나고 눈물로 씻고 씻어도 아물지 않는 이때 선거란 것을 치러야 한다면, 저 이타적 투표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선거를 통해 내가 챙길 혜택이란 게 기껏해야 무엇이란 말인가.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을 눈물 한 방울만큼이라도 헤아려 투표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언니·오빠·누나·형·친구·동생을 잃고 분에 겨운 아이들은 투표권조차 없으니, 그들에게 내 한 표라도 내줘야 하지 않는가.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언제 또 희생될지 모를 아이들과 어른들의 위태로운 삶을 개선할 길은 결국 정치밖에 없으니, 세월호를 기억하지 않는 투표란 이 시절 무슨 의미인가.

그래서 투표하러 가는 길은 무거울 것이다.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그 길이 수백리, 수천리로 연장될 것이다.

투표날 집을 나서면, 먼저 아파트 화단의 초여름 녹음이 두 눈에 가득 찰 것이다. 초목의 피고 짐을 인생에 견준다면, 지금은 사춘기를 막 지나 청년의 문턱에 다가가는 나이, 고등학교 2학년쯤이 아닐까. 그러니 눈물이 핑 돌 것이다. 발길을 안산으로, 팽목항으로 돌려야 한다. 아직도 틈만 나면 심장을 파고드는 4월16일의 처참한 진도 앞바다 풍경을 다시 대면해야 한다.

유족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1박2일 뜬눈으로 농성해야 했던 불통의 청와대 앞에도 가봐야 한다. 유족들이 국정조사 좀 빨리 하자며 또 며칠씩 한뎃잠을 자야 했던 파렴치의 국회에도 가봐야 한다. 온갖 망언과 망동으로 유족들의 상처를 헤집은 국회의원·관료·목사·교수·언론인 나부랭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걸을 것이다. 그들의 친구는 누구인지 생각할 것이다. 이런 비인간들은 마음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데, 정부의 태만과 무심을 비판하는 이들은 ‘잠복 수사’까지 해가며 처벌하는 권력. 이 체제가 민주인가 독재인가는 투표장 가는 길에서 좀더 침잠해야 할 문제다.

아파트 모퉁이를 돌 무렵, 평소처럼 장미꽃 향기가 정신을 깨울 것이다. 덩굴 속에서 싱그럽던 아이들의 얼굴을 볼 것이다. 숱한 사고로 피붙이를 잃은 이들이 모여 “참사 당시에만 끓어오른 관심은 다음 참사를 부르는 초대장”이라며 울부짖던 기자회견장에도 들러야 한다. 그리고 경기도 고양으로, 전남 장성으로 다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이를 어쩌나. 그렇게 돌고 돌아 도착한 투표소는 중학교 교정. 출근길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리던 곳. 교실 안 기표소에 들어서면 장미꽃 같은 그 아이가 있을 것이다. ‘미안하다’ 가슴을 치고, 아이와 나란히 붓두껍을 누를 것이다. 선홍의 인주는 눈물로 얼룩진 아이의 영혼 위에 찍힐 것이다. 대한민국의 어엿한 시민으로 커갈 기회조차 잃어버린 너에게 내가 해줄 건 이것밖에 없구나. 내일은 사십구재. 다음 세상에서 부디 행복하거라.

박용현 탐사기획에디터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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