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현 경제·국제 에디터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법조계의 ‘집단사고’(group thinking)가 관심을 끌었다. 청와대도 내정 전 인사검증 과정에서 안 변호사가 다섯달에 16억원어치를 수임한 사실을 알았지만 “큰 문제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마 “대법관 출신이 그 정도면 과한 것은 아니다”라거나 “맛있는 식당에 사람이 몰리는 것처럼 능력의 문제이지 꼭 전관예우라는 색안경을 쓰고 볼 일은 아니다”라는 얘기가 이때부터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전관과 로펌 출신으로 짜인 청와대 민정라인의 생각은 일반인의 기준과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집단사고는 학연, 혈연, 지연 등으로 엮인 집단이 자기들끼리 생각을 되먹임하며 외곬으로 흘러 마침내 바깥세상과는 동떨어진 판단기준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위기에 상시 노출되는 저항 조직의 구성원이나, 매우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엘리트들이 폐쇄적으로 어울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통념에 빠지게 된다. 바깥바람을 쐬지 않으면 생각도 ‘갈라파고스 섬’처럼 되는 것이다.
집단사고가 꼭 법조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행위에 큰 영향을 주는 경제 전문가들, 즉 대학의 경제학자, 연구소의 연구원, 경제 관료, 경제 담당 언론인의 생각도 어느 면에서는 법조인들 못지않게 닫혀 있다.
‘기업은 부자가 되는데 국민은 가난해지는 덫’에 빠진 한국 경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무엇보다 분배에 대한 시각이 바뀔 때가 됐다. 임금을 올려주고 증세를 통한 재분배로 가계의 소비여력을 늘림으로써 소비-생산-투자가 선순환이 되도록 하자는 제안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분배 문제를 더 외면하면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국세청과 한국은행의 자료를 기초로 피케티의 방법을 적용해 2012년 우리나라 상위 10%의 소득 비중도를 산출해 보니 45%였다(<매일경제> 6월2일치). 이는 프랑스 등 유럽권이나 일본보다 불평등 정도가 심한 것이며 피케티가 위험한 예로 든 미국의 48%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쯤 되면 학계나 경제부처, 국책연구소에서 분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발전전략에 대한 연구나 제안이 나와야 하지만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다. 여전히 성장이 가장 좋은 분배정책이고, 그러려면 기업에 자유를 주고, 세금을 깎아주어야 한다는 오래된 노래만 틀어댄다.
환경이 바뀌었는데 경제전문가들이 새로운 생각을 못하는 것은 학문적 배경이 단조로운 탓도 있다. 국내 경제학계의 거두들은 특정 명문고와 대학 동창생들이다. 이들은 나이가 환갑이 넘은 지금도 만나면 “고등학교 때 어느 교수가 줄곧 1등을 했고 어느 장관이 2등을 했다”는 얘기를 즐겨 한다. 국내 대학과 연구소에 포진한 경제, 경영학 분야 해외 박사 가운데 70% 정도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경제관료나 기자들도 연수나 유학 기회가 생겼을 때 90% 이상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미국만 고집해도 다양한 학문적 접근법을 택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은 세계를 경영하는 대륙국가인 그 나라의 시장주의 경제학을 배워 와 똑같은 얘기를 평생 되풀이한다. 어느 면에서 보면 아류가 더 교조적이다. 중국에서 이미 쇠락한 성리학을 붙들고 ‘소중화’를 자부하다 변화하는 세계를 보지 못하고 나라를 잃은 민족이다.
<히든챔피언>의 저자인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진정한 혁신은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 or)이 아닌 ‘이것도 저것도’(both)의 철학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새로운 생각은 너그러움을 바탕으로 섞일 때 나오는 것이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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