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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시진핑의 전략 / 박민희

등록 2014-06-11 18:24

박민희 국제부장
박민희 국제부장
5월2일 중국 국유 에너지기업인 중국해양석유의 40층 건물 높이 초대형 심해 석유시추설비가 남중국해 시사군도의 바다에 우뚝 섰다. 중국과 베트남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 해역에선 중국이 지질탐사를 해왔을 뿐 석유시추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이 강하게 반발하는데도 중국이 시추를 강행한 것은 올해 초 최고 지도부 차원에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시진핑의 외교전략이 동아시아를 뒤흔들고 있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국 최고지도자가 된 뒤 첫 연설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선언했다. 18차 당대회 뒤에는 “우리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 있으며,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 이 목표를 실현할 자신감과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프랑스 방문에선 “중국이라는 사자가 이미 깨어났다”고 했다. 두 세기 전 나폴레옹이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마라.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가 흔들린다”고 했던 데 대한 현재 중국의 대답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무릎 꿇기 전 중국의 위상을 복원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장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며 충돌하는 일은 없겠지만, 우선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전통적 영향력을 회복하려 한다. 청 제국에 결정타가 된 1895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일본에 빼앗긴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의 회복, 중화제국의 판도에 속했었다고 여기는 남중국해 영유권 회복은 그 첫걸음이다. 그러려면 2차대전 이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짜놓은 틀과 대중국 포위망을 흔들 수밖에 없다.

시진핑 주석은 ‘해양강국’ 건설을 강조하며 중국군이 태평양 지역에 힘을 투사할 수 있는 강력한 군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과거 소련 침략에 대비한 육군 중심의 군 체제를 개편해, 일본과의 해상 갈등을 비롯해 남·동중국해 분쟁에 대비할 수 있는 해군과 공군의 능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약해지고 있는 미국의 힘의 공백을 파고들면서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인다. 러시아와 경제·군사 협력을 급속히 강화하면서 미-일 동맹에 맞서는 포석도 놓고 있다. 시진핑과 푸틴은 유라시아의 동서 양쪽에서 함께 미국의 일극체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신냉전 시대’라는 진단도 많지만, 세계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힘의 논리로 이합집산하던 19세기 말과 더 닮아 보인다. 일본은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며 재무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정치적 필요에 따라 북한과의 대화에도 나섰다. 러시아는 북한과 루블화로 무역 결제를 하기로 하고 부채를 탕감해주는 등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키우고 있다.

한국만 전략 없이 ‘신제국주의 시대’의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들고나왔지만 북한 붕괴론, 대북 강경론에 매달렸고, 통일 대박론을 외쳤지만 남북관계는 더욱 꼬이고 북핵 해법은 오리무중이다.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조했지만, 최근엔 중국 견제 목적이 분명한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에 빨려들어가는 위험신호가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군 지도부는 한국에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를 추진하고 있음을 여러번 공개적으로 밝혔다. 동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면서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와 미사일방어로 중국을 겨냥하는 도박은 얼마나 위험한가.

다음달 시진핑 주석이 방한한다. 그가 북한보다 한국에 먼저 온다고 호들갑 떨기 전에, 박근혜 정부는 깨어난 사자와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현명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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