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언론의 왜곡보도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은 지난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북한이 남파한 간첩의 조종을 받은 폭동이라고 날조하여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반란수괴 등의 죄명으로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은 전두환 장군을 찬양하는 왜곡보도도 서슴지 않았다. ‘인간 전두환 -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조선일보 1980년 8월23일치)이라는 기사도 그중의 하나다.
왜곡보도의 일상화로 언론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자, 언론을 풍자하는 우스갯소리가 인터넷에 나돌기도 한다.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요즘 언론이 보도한다면, ‘소크라테스, 악법 옹호 파장’이라는 제목을 달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이쯤 되자, 언론보도로 궁지에 몰린 권력자들은 흔히 ‘왜곡’이라는 딱지를 언론에 붙이면서, 억울하다는 주장을 편다.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의 경우가 최근의 사례다. <뉴스와이(Y)>의 지난 2일 밤 뉴스가 육성을 담아 보도한 사실은 이렇다. 해양경찰청과 청와대 사이에 이뤄진 통화 녹취록의 왜곡 인용을 둘러싸고, 여야 의원들 사이에 말싸움이 벌어졌다. “싸우지 말고, 나갈 거면 그냥 나가요”라는 한 방청석 유가족의 항의에 대해, 조 의원이 “당신 뭡니까?”라고 소리를 질렀다. “유가족입니다”라는 대답이 나오자, 그는 “유가족 분들 그냥 계세요. 지금 진실 규명을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지금”이라고 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뉴스와이>는 이날의 상황을 “여당 의원들은 희생자 가족들을 향해 막말을 던져 또 한 번 상처를 줬다”고 설명했다. 조 의원의 말은 언론에 따라 높임말 그대로 보도되기도 했고, 반말 투로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말투로 보도했건 간에 그의 말이 유가족에 대한 핀잔으로 들린 것은 사실이다. 이날 뉴스는 그의 말에 울먹이는 유가족 대표의 항변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의원은 유가족에 대해 ‘반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언론이 자신의 말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조 의원의 말을 문제 삼은 것은 그가 반말을 했느냐 여부가 아니다. 언론은 국정조사장의 분위기에 절망을 느낀 유가족에게 언성을 높여 핀잔을 줌으로써, 그들의 상처를 다시 건드린 사실을 지적했던 것이다.
조 의원이 만일 실제로 연장자인 유가족에게 반말을 썼다면, 그는 공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도 자격미달일 것이다. 또한 그의 핀잔이 반말이 아니라 높임말 투로 나왔다고 해도,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태도인 것은 변함이 없다. 언론이 조 의원을 비판한 것은 ‘진실을 규명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서, 유가족을 대신하여 진실을 규명하려는 성실성보다는, 유가족을 무시하고 그들을 억압하려는 권력자의 모습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론은 중요한 사실을 왜곡하는 큰 잘못을 지금도 저지르고 있다. 그래서 언론의 왜곡보도는 아무리 심한 말로 비판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권력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언론의 왜곡보도는 주로 언론이 권력에 맞설 때가 아니라, 굴종했을 때 저질러진다. 따라서 권력자들이 자신의 문제행동이나 비리가 언론에 보도될 때, 이를 왜곡보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실왜곡일 경우가 많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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