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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이 많은 꿈을 왜 몰랐을까 / 김영희

등록 2014-07-30 18:23

김영희 문화부장
김영희 문화부장
‘내가 지금 탄 세월호, 나는 갔어야 됐어 네스호/ 이런 미친놈들의 항해사, 너 때문에 나는 즉사/ 이런 길 속에 나는 묻혀, 넌 나를 못 쳐/ 내가 니들 뺨을 쳐? 니들은 내 등을 쳐/ 우리가 출발예정시간 여섯시 삼십분, 우리가 출발예정시간 여섯시 삼십분/ 우리가 출발한 시간은 여덟시 이런 씨발, 니들이 그따구로 이 배를 운전?/ 지금 배는 85도, 내 머릿속 온도는 지금 100도.’

고3이면서도 힙합 오디션 프로인 <쇼미더머니>를 본방사수하며 관련 기사나 댓글까지 다 찾아 들려주는 내 아들의 모습이 겹쳐 더 그런지 모르겠다. 단원고 2학년 6반 김동협군은 평생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공개된 휴대전화 동영상에서 동협이는 말했다.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이 썅.” 그도 꿈이 래퍼였을까? 침몰 상황을 중계하듯 전하던 동협이는 “마지막으로 제 라임을 한번 뽐내야겠습니다” 하며 랩을 남겼다.

40일 넘게, 적잖은 <한겨레> 사람들은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 박재동 화백이 그린 단원고 학생들의 초상캐리커처와 사연, 가족들의 편지를 싣기 시작하면서다. 제작된 다음날 지면을 점검하는 저녁 편집회의에서 ‘잊지 않겠습니다’를 확인하다 눈가가 젖으면 서로 못 본 체하고, 아침에 집으로 배달된 신문에서 같은 기사를 다시 읽다가 눈물을 흘린다.

원통해하는 가족들에 대한 가슴 아픔과 지지부진한 진상규명에 대한 분노가 뒤엉킨 감정 속에, 새삼 느낀 건 정말 아이들의 꿈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점이다. 이종격투기 대회 출전을 계획했던 홍래,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며 미용대회에 나갈 재료비를 아껴놨던 혜경이, 유니세프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길 바라던 하영이, 여군 장교가 되겠다던 주이, 작곡가가 되려던 승묵이…. 그동안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요즘 애들은 자기 꿈이 없어’라는 말을 들어왔다.

몇주 전 큰아들 학교 입시설명회에 다녀왔다. 실용음악학원의 실기 연습도 버거운 아이가 다른 학과까지 지원해 합격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문자에 쫓기는 심정이 됐다. 수능 외에 학생부 교과, 학생부 전형, 논술모집, 적성고사… 여기에 수시와 정시의 경우와 과별, 과목별 반영비율까지 고려하면 경우의 수는 꼽기도 힘들다. 그래도 설명회에 나온 선생은 한번의 학력고사 점수로 결정되던 예전에 비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대학별 점수표와 ‘합격 사례’로 가니 막막하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제시하는 표 안에서 과목별 1, 2등급 이외 학생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 학생의 89%인 3~9등급 대다수 아이들의 ‘꿈’은 이 표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대학만이 길은 아니라고 누구나 쉽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 사회와 학교는 중·고교 시절 6년 내내 대부분의 학생들을 서울 및 수도권 대학을 목표로 전력질주시킨다. 이런 속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꿈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나 논술답안이 학원에서 베껴온 듯 똑같다고 교수들은 불평하지만, 아이들의 다양한 꿈을 덮어버리는 건 주요과목 점수가 높은 학생들을 끌어들이려 교묘히 짜놓은 입시전형 쪽이다.

열일곱살 250개의 꿈을 떠나보내고서야 깨달았다. 이 많은 꿈을 왜 몰랐을까. 지금 이 땅의 아이들이 등급이 아니라 하나하나 자신의 꿈을 드러내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또한 세월호 아이들을 잊지 않는 길 아닐까.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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