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라크와 시리아 사태, 그리고 우크라이나 내전 등을 볼 때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비판가들은 “대통령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이들은 오바마가 이런 위기들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않고 있다면서 더 많은 리더십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인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오바마가 위험스러울 만치 수동적이라면서, 국제 문제 해결보다는 골프를 즐기고 있다고 힐난한다.
이런 비판은 잘못됐다. 오바마는 이 현안들을 무시하고 있지 않다. 어떤 경우에 미국은 심지어 과다하게 관여를 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오바마든 미국이든 최소한 비판가들이 촉구하는 방식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
가자지구의 경우를 보자. 미국은 이스라엘에 수십억달러의 군사지원을 제공하면서 수십년간 이스라엘을 지원해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책에 약간 온건한 비판을 해오긴 했으나, 지금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지지하고 있다. 게다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팔 평화협상 중재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항구적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나, 그가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미국이 가자 이슈에 관여하고 있다는 게 아니다. 사실상 미국은 너무 많이 연루돼 있다. 중재자는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미국은 중립적이지 않다. 미국은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자랑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태 회귀’를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평화 헌법’에서 벗어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후텐마 기지 이전을 독려하고 있다. 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와는 새 기지 협정을 결론지었고, 베트남도 유혹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최소한 군사적 의미에서 아시아에 너무 많이 관여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 군국주의의 두려움을 다시 일깨우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지 반대 정서를 무시하며, 역내 군비경쟁을 촉발함으로써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새로운 대중국 봉쇄 전략은 이 지역에서 새로운 냉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일 뿐이다.
비판가들은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해 러시아를 밀쳐내고, 이라크 내 극단주의 세력을 공격하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바마는 현명하게도 이런 분쟁에 미군을 파병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미국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비군사적 지원, 시리아 온건파 반군에 대한 군사지원 강화, 이라크 내 정치적 해결 추진 등의 방식으로 세 분쟁에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어떤 지역들에서는 너무 많이, 그리고 어떤 지역들에서는 신중하게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비판가들은 오바마가 세계 유일 패권적 지위를 재확립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오바마는 군사력의 한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힘의 한계, 정책 결정에 관한 미국 대통령의 영향력 한계라는 세 가지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오바마는 여러 차례 군사력을 마지막 옵션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이라크·리비아 군사개입은 미국이 세계를 무력으로 개조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미국 국방부는 지도자들을 축출하고 많은 사람들을 살상할 수 있으나, 민주주의와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미국 대통령은 무제한의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예컨대, 오바마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나, 의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의회는 오바마의 많은 계획들에 반대함으로써, 미국 대통령이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는 정말로 더 위험한 곳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오해는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해 전세계의 불을 진화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미군은 불을 끄기보다는 더 많은 불을 잉태시켰다. 오바마의 외교정책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신중함은 그런 문제에 속하지 않는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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