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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심장을 멈추고 어떻게 사나

등록 2014-08-04 18:39수정 2014-08-04 19:58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긴 병에 효자 없다’며 이제 그만 세월호 악몽을 털어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잔다. 말은 점잖지만 이럴 땐 비수다. 아직 병치레를 시작도 안 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자리에 눕지조차 못한 이들에게 무슨 긴 병 운운인가. 세월호 피로감이 적지 않다며 ‘이쯤 됐으면 잊자’고도 한다. 내겐 발목을 적시는 불편함에 불과한 물이 누군가에겐 턱밑을 치받는 물이라면 내 불편함 정도는 견뎌주는 게 사람이다. 그래야 내 턱밑까지 물이 찼을 때 누군가 자신의 피로감을 무릅쓰고 나를 구해준다. 그러라고 사람은 함께 사는 것이다.

망자와 가족들에게 모든 죽음은 개별적이다. 그 공포와 슬픔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교통사고라거나 ‘하늘 아래 제 자식만 죽었냐’고 막말을 퍼붓는 이들에게 ‘당신 자식이 학살당하듯 수장되는 광경을 눈앞에서 봤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대응해야 하는 현실은 아득하고 끔찍하다. 이 정도로 공감이 안 되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아득하고 내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 감당해야 할 고통의 몫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3층에 있던 아이가 5층 객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손톱이 빠지도록 5층까지 올랐을 17살 아이의 마지막 순간을 부모가 어떻게 잊나. 엄마 꿈에 나타난 아이가 배고프다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듣고 걱정하던 엄마들이 우연하게 그날 함께 있던 아이들이 아침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배고프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며 오랜만에 웃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게 부모들의 일상이다. 실종된 가족까지 한자리에 넣은 가족 그림을 그려주는 초상화가에게 부모는 한여름인데도 털모자와 파카를 입은 사진을 건넸다. 바닷속에서 추울까 봐. 그러지 말라고 인위적으로 강요하고 결심하면 그런 마음이 끊어지나.

광주항쟁 당시 거리로 나가겠다는 고등학생 아들을 말리던 아버지는 따귀를 때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이와의 마지막이 되었다. 30년이 넘었지만 아비는 아직도 그게 어제 일처럼 마음에 걸린다고 통곡한다.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가다가 자기가 왜 죽는지도 모른 채 갑자기 세상과 결별했다. 명백한 의문사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걸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 이유를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고 본능이다.

다시 묻자. 자식이 당신 눈앞에서 죽었다. 이유를 알고 싶다 했더니 그렇게 계속 따져 물으면 주위 사람도 피곤하고 경제도 어려워진다며 그만하자고 하면 당신은 아이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나. 정상적인 부모라면,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요구를 하는 이들은 무지한 동시에 잔인하다.

만삭의 임신부가 자는 모습을 보면서 김상숙 시인이 부모자식이 무엇인지 다시 알려주었다. “배를 둥글게 감싸고 바다를 항해 중이다/ 둘이 한배를 탔다는 게/ 이 배의 동력이다/ 사십주야 폭풍우 그치면/ 태양의 띠를 두르고 나올 깨끗한 울음”

부모와 한배를 탔던 깨끗한 울음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력이 끊겼다. 그 이유를 알아야 이별의 준비라도 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한배 탔던 자식을 잃은 부모의 간절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치밀한 여론전이나 회유, 겁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심장을 잠시 멈추라는 요구처럼 가당치 않은 요구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에 제대로 집중해 달라. 사람의 사회와 짐승의 사회를 가르는 분기점이 그 안에 있다고 나는 느낀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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