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이 2012년 초에 낸 자서전 <아이(i) 전여옥>에는 정치인 박근혜의 화법을 강하게 헐뜯은 대목이 있다. “박근혜는 늘 짧게 답한다. 처음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지만 거기에서 그쳤다. 어찌 보면 말 배우는 어린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와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전 전 의원은 ‘백 단어 공주’라는 별칭까지 붙이며 박 대통령의 자질을 의심했다.
그런데 베이비 토크가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유용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학과 경영학 책에는 베이비 토크와 유사한 개념으로 ‘오리말’(duckspeak)이라는 게 있다. 이 용어는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공상소설 <1984년>에 처음 썼다.
오웰은 그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리말이란 오리처럼 꽥꽥거린다는 뜻이지. 이건 두 가지 상반된 뜻을 지닌 재미있는 낱말 중의 하나로 적에게 사용되면 비난이 되고 뜻을 같이하는 동지에게 사용하면 칭찬이 된다.” 즉 ‘민주적 독재국가’처럼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이 공존하는 모순된 사고체계에서 나오는 기만적 표현이 오리말이다. 오웰은 수필집 <정치와 영어>에서도 오리말은 언어의 타락이며, 비판적인 지식과 창의적인 사고를 억제하는 우민화 기술로 활용된다고 비판했다.
정부와 여당에서 요즘 ‘민생’과 ‘경제 살리기’라는 구호가 자주 나온다. 박 대통령도 5일 2기 내각의 진용이 갖춰진 뒤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민생경제를 살리고 국가혁신과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날 국무회의에선, 박 대통령 스스로 5·19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에게 눈물까지 보이며 약속한 세월호 사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만큼 중요한 민생 현안이 있을까? 세월호 사태를 어물쩍 덮고 가려는 오리말들이 난무하는 것 같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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