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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스포츠토토의 비밀 / 이춘재

등록 2014-08-13 18:32수정 2014-08-13 18:32

이춘재 스포츠부장
이춘재 스포츠부장
‘제2의 김연아, 박태환’을 키우려면 스포츠토토를 많이 사야 한다? 잠꼬대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맞는 얘기다. 최근 스포츠토토(체육진흥투표권)의 레저세 부과 법안을 둘러싼 논란 뒤에는 이런 웃지 못할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월 스포츠토토 매출액에 10%의 레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방세인 레저세를 걷어 경기불황으로 세수가 크게 줄어든 지방재정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레저세가 부과되면 관련법에 따라 4%인 지방교육세와 2%의 농어촌특별세가 추가된다. 스포츠토토에서 실제로 빠져나가는 돈은 매출액의 16%에 이른다.

국회가 최근 이 법안을 처리할 움직임을 보이자 대한체육회 등 체육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체육예산의 80~90%를, 대부분 스포츠토토로 조성되는 체육기금에서 조달하는데, 레저세를 걷으면 국가대표선수 지원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체육예산 1조463억원 가운데 8977억원이 체육기금에서 나온 돈이다. 레저세를 걷으면 해마다 4000억원 이상이 체육기금에서 빠져나가 ‘대한민국 체육행정은 올스톱된다’는 게 체육계의 주장이다. 2018년까지 체육기금에서 1조원 이상의 지원이 필요한 평창겨울올림픽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한다. 체육계는 “2010년에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다가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폐기된 적이 있다”며 정치인들의 무모함을 성토한다.

정책통으로 소문난 이한구 의원이 정말 무모한 걸까. 이 의원 쪽에 물었다. “스포츠토토의 수익은 대부분 서민들 주머니에서 나온다. 엘리트 체육이나 국제대회 유치를 서민들 주머닛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 과연 합당한가?” 엘리트 체육은 기업과 고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납세자한테서 걷은 세금(국고)에서 지원하고, 서민 주머니에서 나온 스포츠토토 수익금은 서민 복지에 쓰이는 지방재정을 지원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스포츠토토는 소액 베팅(100원)이 가능해 서민들이 주로 구입한다. 2004년 3000억원에 불과했던 스포츠토토의 매출은 10년 새 10배나 늘어 현재 3조원에 달한다. 살림이 갈수록 팍팍해지면서 ‘소박’(소박한 대박)을 기대하는 서민들의 돈이 점점 더 몰린 탓이다.

스포츠토토를 운영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체육기금이 지자체 체육시설과 저소득층 스포츠바우처 등 서민들의 체육복지에도 쓰인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엘리트 체육과 국제대회 지원 규모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그 비중은 적다. 올해 지원 내역을 보면 생활체육에는 2146억원이 지원되는 데 반해 엘리트 체육과 국제대회 지원은 5800억원이 넘는다. 레저세를 부과하면 해마다 4000억원 가까운 세수가 확보돼 지자체의 세수 부족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다. 서울 25개 구청장들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지출 증가로 복지 디폴트(지급불능) 위기에 빠졌다’고 경고하면서 밝힌 올해 복지예산 부족분은 1154억원이다.

올해 체육 관련 예산은 전체 정부 예산의 0.3%에도 못 미친다. 선진국들은 예산의 1% 안팎을 지원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한테 ‘국위선양’을 이유로 병역면제 특혜를 줄 정도로 엘리트 체육을 중시하는 정부치고는 지나치게 짜다. 체육기금의 국고 비중은 2010년 20%에서 해마다 줄어 현재 14%에 그친다. 스포츠토토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서민 주머닛돈으로 엘리트 체육을 지원하면서 온갖 생색은 정부가 다 냈던 셈이다. ‘비정상’도 이런 비정상이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박근혜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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