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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이 그렇게 두려운가, 몽진하라 남한산성으로

등록 2014-08-25 16:57수정 2014-08-26 18:41

시민보호 해야할 수천명 경찰이 청와대 앞 시민 통행 막아
대통령 만나겠다는 시민이 테러리스트?…막는 이유 뭔가
시민과 대화 거부할 의도라면 조용한 곳으로 집무실 옮겨라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72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용오씨를 살리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결단과 가족대책위 면담을 촉구하며 4일째 농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용오씨를 살리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결단과 가족대책위 면담을 촉구하며 4일째 농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오늘은 아침부터 검문한다. 상행은 자하문 지나 경기상고 앞에서부터, 하행은 효자동부터. 덕택에 출근길 도로는 세검정부터 주차장이 되어버렸고. 그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벌써 몇 번째인가. 언젠가는 폭우 속에서 시청 앞부터 경복궁역 정거장까지 걸어야 했고, 엊그제는 경복궁역에서 경기상고까지 경찰 바리케이드를 비집고 걸어야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엊그제는 최악이었다.

모서리마다, 교차로마다 좁게는 5열, 넓으면 10열, 15열 밀집대형으로 늘어선 경찰에 인도는 막혀 있었다. 정거장이 코앞이어도 다가갈 수 없었다. 하긴 도로를 봉쇄한 차벽 때문에 버스를 탈 수도 없었지만, 정거장이 보이는 곳에서마다 ‘차 좀 타자, 차 좀 타자’ 하소연이 나왔고, 끝내 ‘집 좀 가자, 집 좀 가자’ 울화통이 터지곤 했다. 그렇게 적선동, 통의동, 누상동, 통인동, 효자동, 신교동, 청운동, 궁정동 인도와 골목을 비집고 걸어야 했다.

통인시장 앞이나 효자동에선 시민들이 경찰의 벽과 벽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왜 막는 거지? 왜 집에도 못 가게 하는 거지?” 먼 하늘만 쳐다보는 의경들은 말이 없었다. 나잇살 먹어 보이는 기동대 지휘관들은 벽 뒤에 숨어 있었다. 항의가 커지면, 경찰 병력 뒤쪽에서 채증 카메라 10여개가 시민들을 찍어대고, 몸이라도 부딪히면 카메라는 얼굴 가까이 밀려왔다.

“여기가 북한이냐.” 악에 받친 시민들이 일제히 움직이면, 그제야 지휘관쯤 되어 보이는 자가 나타난다. ‘사는 곳이 어딘가, 몇 번 버스 타는가, 신분증 보여주시오.’ 아우성은 더 커진다. “내 집 내가 가는데, 당신들에게 왜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나.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엿볼 수 있고 또 엿보는 게 일인 자들에게 왜 주민등록증을 보여줘. 이 도로가 당신들 것인가.” 분노는 이런 용기까지 깨웠다. ‘너희들부터 신분증 내놔봐. 소속과 관등성명 대봐. 국민 세금으로 밥 먹는 것들이 왜 세금 내는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거야.’ 가끔은 벽 한 귀퉁이에 쥐구멍만한 통로를 열어줬다. 노란 리본을 달지 않은, 늙수그레한 사람들만 그리로 들어가라고 한다. 시민들은 영락없는 쥐새끼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용오씨를 살리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결단과 가족대책위 면담을 촉구하며 4일째 농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용오씨를 살리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결단과 가족대책위 면담을 촉구하며 4일째 농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경찰 바리케이드 하나를 그렇게 통과해 40~50m 가면 거기에 또 있다. 다시 싸워야 한다. 청년 노인 가릴 것 없이, 부부 연인 가릴 것 없이,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청와대 쪽으로 다가갈수록 경찰 벽은 높고 거칠다. 또 터져나왔다. ‘여기 민주국가 맞아? 민주공화국 맞아? 이 나라가 박근혜 나라야?’ 가방을 보여달라는 경찰도 있다. “왜 내가 당신에게 가방을 보여줘. 내가 테러리스트 같은가? 검문하려면 애들 수백명이 죽어갈 때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지 수수방관했고, 그것을 사생활이라며 숨기고 있는 대통령부터 조사해. 왜 우리를 범죄자로 모는 거야?” 막 터졌다.

하지만 경찰이 무슨 죄인가. 그들을 동원해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며 청와대 구중궁궐에 숨어 있는 자들이 문제지. 그들의 눈에 청와대로 접근하는 시민은 일단 ‘우범자’다.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시민은 테러리스트이거나 테러 선동꾼이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시절, 청와대를 습격했던 김신조 일당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돌덩이 하나 집어본 적 없는 시민들을 청와대를 점거하고 이 정부를 전복하려는 자들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봉쇄하고, 또 무례하게 범죄시할까.

박 대통령에겐 그런 경험이 한번도 아니고 두세번씩 있긴 하다. 아버지는 탱크를 몰고 한강 다리를 건너와 정부를 뒤집고 청와대를 접수했고, 대통령과 총리를 잡아들였다. 그런 아버지는 청와대 옆 요정형 안가에서 피살당했다. 전두환과 그 충복들은 권총을 차고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와 계엄사령관 체포를 강압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협박했다. 아버지가 유린해 접수했던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은 이런 총부림 속에서 쫓겨나와야 했다. 지난해 청와대 주인으로 다시 들어간 뒤 첫 휴가에서 ‘저도의 추억’을 운위하며 그렇게 감상에 젖었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을까.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용오씨를 살리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결단과 가족대책위 면담을 촉구하며 4일째 농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용오씨를 살리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결단과 가족대책위 면담을 촉구하며 4일째 농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그러나 본인이 그런 경험을 했고 또 그렇게 당했다고, 시민을 탱크 몰고 쳐들어와 청와대를 접수한 자들과 똑같이 취급할 순 없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 수천명을, 청와대 보호를 위해 시민들을 억압하는 데 동원해선 안 될 일이다. 하긴 이석기 의원 같은 사람의 잠꼬대 같은 말 몇 마디를 갖고 ‘내란음모’ ‘내란선동’으로 몰아붙일 정도로 쿠데타와 전복의 두려움이 뼛속 깊이 각인돼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청와대로 다가오는 시민을 우범자로 보는 건 ‘정신증’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다. 국가기관의 일방적인 선거부정 속에서 당선되긴 했지만, 아버지와 달리 선관위로부터 당선증을 받고 청와대에 입성한 민선 대통령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벌써 130일이 넘었다. 그동안 유가족은 제대로 먹지도 잠자지도 못하며 거리에서 생활해왔다. 단신에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청와대를 뒤집을 수 있을까.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시민들, 경찰 추산 300~400명이 합세한다고 대통령을 어떻게 내쫓을까. 그런 생각 한 오라기도 없는 사람들이다. 설사 당신을 만난다고 해도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두려운가.

그러면 몽진하라. 이 땅의 역사 속에서 비겁한 최고권력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용한 곳으로 집무실과 관저를 옮기라. 왜 두려움에 떨며 시민 가까이 사는가. 시민들도 이제 편해 보고 싶다. 눈치 안 보고 리본 달고, 할 말 하며 걷고 싶다.

어디로 가느냐고? 다행히도 일찍이 그런 무능·무책임했던 조선의 군왕들은 도망칠 곳만은 알뜰하게 준비해뒀다.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이고, 능선은 성벽으로 둘러쳐 놓은 곳, 남한산성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된 곳이다. 시민들이 당신을 만나겠다고 들이닥칠 가능성이 단 1%도 없는 곳이다. 거기엔 비겁한 왕들이 멋지게 꾸며놓은 행궁도 있다. 눈치보지 않고 공사 구분 없이 생활할 수도 있다. 조선의 인조는 백성을 버리고 그곳으로 도망쳤다가, 비록 청의 장수 앞에 이마를 땅에 대고 사죄하며 기었지만, 백성들로부터는 안전했다.

곽병찬 대기자
곽병찬 대기자
청와대? 걱정할 필요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지 않은가. 지금도 실은 ‘기춘대원군’을 넘어, 이승만의 말년 이기붕에 비교되는 분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걸개그림이 박 대통령의 모습을 닭으로 대체했어도 전시되지 못한 이유와 관련된 것이다. 허수아비 대통령을 잡고 있는 게 박정희의 망령, 그 망령을 잡고 있는 게 다름 아닌 김 실장인데, 김 실장 모습은 바뀌지 않아 그랬다는 것이다. 이 권력의 꼭두잡이가 바로 김 실장이라는 시선이다. 사실이 아니길 빈다. 하지만 시민들이 그렇게 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김미화 “세월호 유가족 아픔 나누는 김장훈씨 나처럼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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