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문화부장
서울 이태원로에서 한남동 주택가로 올라가는 언덕에 있는 리움 미술관. 장 누벨이 설계한 전시관 ‘뮤지엄2’ 비스듬히 유럽풍 지붕을 가진 범상치 않은 집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몇 걸음만 걸으면 리움의 뜰로 들어설 거리다. 2004년 개관 당시만 해도 이건희 삼성 회장 가족이 살던 이 저택은, 리움이 지난 10년 삼성 일가와 뗄 수 없는 숙명이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 전 개관 10년을 기념한 ‘교감전’에 갔다. 몇 년 만에 가보니, 뜰에 서 있던 청동 거미상이 사라진 사실보다 고급 주택가에 성채처럼 우뚝 서 있던 리움 주변의 변화가 더 눈에 띈다. 이태원로에 늘던 개성있는 레스토랑이나 상점들은 이제 주택가 안쪽으로도 야금야금 진출했다. 리움에서 기획전이 열리면 주변 상점 매출이 30%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술관의 힘은 세다. 하긴 몇몇 이곳 음식점들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것도 ‘대박’이 났던 2012년 서도호전 무렵부터다.
전시는 야심찼다. 아이웨이웨이의 <나무>처럼 처음 선보이는 작품 외에도 기존 상설전 작품들이 ‘교감’이란 이름답게 섞여 새로운 분위기를 뿜어냈다. 고려불화 양옆에 자코메티의 청동상과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가, 정선의 <인왕제색도> 앞에 서도호 작가가 1.5㎝짜리 인물을 빼곡히 한반도 지도 모양으로 심어놓은 <우리나라>가 있는 식이다.
교감전이라는 타이틀은 하지만 역설적이게 리움이 얼마나 시대와 대중들과 ‘교감’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자유로운 동선과 도시락도 즐길 법한 야외공간을 가진 해외 유명 미술관을 가본 이들이라면, 리움은 너무 ‘엄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고집 탓인지, 발주자의 요구인지 모르겠다.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로 4층에 간 뒤 나선형 대리석 계단을 내려와 각 전시실을 보도록 꽉 짜놓은 동선은 답답하다. 초기엔 예약제로 운영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정장한 경비들까지 마주치다 보면, 마치 ‘우리 시선을 벗어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많은 미술 관계자들은 리움이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견줘 부끄럽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내 미술관이라고 얘기한다. 국보급 문화재뿐 아니라 현대미술 컬렉션도 국립현대미술관보다 뛰어나다. 그런데 이내 아쉬움이 뒤따른다. 기획전의 대부분이 오너 취향이 반영된 미니멀 사조에 집중됐다는 비판은 그중 하나다. 리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은 작품 구입비 등 예산을 공개하지 않는 건 물론 ‘공익재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차보고서도 안 낸다. 오너 가족이 관장이란 점이 작용하는 걸까?
하지만 미술관은 그 출발이 무엇이든 짓는 순간 공공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 사립학교가 그렇듯. 1929년 석유재벌 록펠러 2세 부인 등의 수집품으로 시작한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전문가 관장 앨프리드 바의 체계적 지휘 아래 명성을 얻었다. 2003년 일본의 부동산재벌 모리 미노루는 도쿄 롯폰기힐스에 모리미술관을 열며 외국 전문가를 관장으로 영입했다. 모마나 모리는 패션, 디자인 등 대중과 교감하는 전시로도 유명하다. 운영은 폐쇄적이었지만 존 듀이에게 컬렉션을 제공해 ‘경험으로서의 예술론’을 탄생시켰던 필라델피아 반스 갤러리에 비하면, 리움은 외부 연구진과의 협업에도 인색하다. 모리미술관 개관 이래 도쿄 도심이 부흥하고, 오하라미술관이 오카야마현 작은 도시를 문화도시로 만든 사례처럼, 리움이 지역에 뿌리박았느냐는 물음도 나온다.
주변 풍경은 변했다. 리움도 변할까? 교감전에 리움으로선 ‘파격적’으로 이태원 상인 등을 인터뷰한 작품을 포함시켜 지역사회와 소통하려 한 것을 그런 노력으로 읽고 싶다. 리움은 너무 아까운 자산이다.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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