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정치부장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물러나야 할 것 같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세월호 1·2차 여야 협상 실패, 안경환·이상돈 비대위원장 영입 논란 등으로 세 번이나 당에 치명상을 입혔다. 본인의 의도, 현 상황의 원인과 상관없이 리더는 ‘나쁜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둘째, 박영선 원내대표는 세 번 다 명확한 논의 절차 없이 사실상 혼자 결정했다. 처음 한 번은 ‘실수’라 하더라도, 세 번이나 연거푸 같은 일을 반복하면 이는 ‘스타일’이다. 혼자 결정하고, 문제 터지면 어영부영 넘어가고, 남 탓하고. 누구와 닮지 않았는가? ‘박영선 스타일’은 새정치연합은 물론 조직운영 원리에 맞지 않는다.
셋째, 박영선 원내대표는 예측 능력이 떨어진다. 내가 내린 결정으로 향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제대로 예상하지 못하는 것도 리더로선 결격사유다. 이상돈 비대위원장 선임 파문이 처음 일던 11일 당내는 한결같이 “설마”, “비상식적”, “그렇게 안 될 것”이라 했다. 박 원내대표 쪽은 “당내 반발 있겠지만, 그렇게(이상돈 비대위원장) 되지 않겠어?”라고 했다. 상황 판단, 예측, 공감 능력 모두 문제가 있다.
이상돈 비대위원장 선임에 대해 박 원내대표 쪽은 “창의적 발상이라 볼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그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7·30 재보궐선거 참패로 드러난 새정치연합의 현 문제는 보수·진보 갈등, 외연 확대 논란이 아니라 추락한 국민 신뢰와 조직을 어떻게 추스르느냐였다. 새정치연합이 박영선에게 기대한 것도 합리적인 보수인사 끌어들여 당을 중도정당화하라는 게 아니었다. 당내 역학구도상 박영선에겐 ‘이상돈 비대위원장’을 밀어붙일 힘도 없다. 이런 상황 판단을 못한다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
12일 김한길·문재인·문희상·박지원·정세균 등 당내 중진 5명은 박 원내대표와 모임을 가진 뒤, “원내대표 거취 문제 얘기 자제”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런 합의에 입맞춘 새정치연합 ‘계파 수장들’의 비겁함은 논외로 하자. 그렇게 ‘자제’가 될지도 의문이다.
중진들과 박 원내대표 스스로 문제를 ‘계파 갈등’ 프레임으로 만들어 버렸다. 새정치연합 파문의 근본 원인을 ‘계파 갈등’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원내대표 될 때, 비대위원장 맡을 때, 새정치연합에 계파 갈등 있는 걸 몰랐나? 박 원내대표는 각 계파가 정치적 목적으로 자신을 흔든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세월호 협상 실패, 비대위원장 파문 일으킨 건 ‘계파’가 아니라 ‘박영선’이었다.
새정치연합은 계파에 속하지 않은 그가 계파 갈등을 중화시켜줄 것을 기대했다. 김한길·안철수 체제가 지닌 ‘모호함’을 보완할 ‘박영선’이란 대중성과 선명성에 기댔다. 돌이켜보면 ‘박영선의 선명성’이라는 것도 삼성 문제 등 특정 사안에 개별 의원으로서 끈질기게 파고들거나, 공격적인 태도, 앵커 출신다운 또록또록한 발음 등 외형적 요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 ‘박영선식 선명성’에 지도자 감투를 씌우니 문제가 드러났다.
박 원내대표로선 이렇게 물러나고 싶진 않을 거다. 계속 남아 결국 자신이 옳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을 거다. 그럴수록 더 꼬인다. ‘포스트 박영선’ 대안은 있는가? 궁즉통(궁하면 통한다)이다. 최소한 당이 더 추락하지는 않는 ‘하방 경직성’은 확보할 수 있다.
박영선 개인은 많이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구원투수로 올라와 난타당하고서 “야수들이 나 골탕 먹이려 일부러 공 빠뜨린 거 아니냐” 하면 다음엔 정말 고의로 공 빠뜨리는 게 뭔지 보게 된다. 투수 교체 시기는 이미 늦었다. 그래도 바꿔야 한다. 야구는 9회가 끝이지만, 정치는 끝이 없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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