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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북-일 교섭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 이영채

등록 2014-09-14 18:57수정 2014-09-14 22:47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9월13일 도쿄도 내에서 2002년 북-일 평양선언 12주년을 기념하고 북-일 국교정상화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집회가 열렸다. 지난 5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북-일 합의에 의해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재조사 결과 발표가 다가오는 시점이어서 집회는 여느 때와 달리 긴장감이 높았다. 약 200명의 참가자는 북-일 국교정상화의 조기 실현을 통해 재북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재북 피폭자 문제, 재일 조선인 법적 지위 문제 등 전후 보상의 여러 현안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같은 시각 히비야 공원에서는 일본인 납치피해자 가족 및 관련 단체들 주최로 납치피해자 전원의 즉각 귀국을 요구하는 ‘국민대집회’가 열렸다. 1800여명이 참가했다. 아베 신조 총리, 야마타니 에리코 납치문제 담당상 등 정부 관계자가 대거 참여한 가운데, 주최 쪽은 ‘애매한 조사 결과는 필요 없다’, ‘지금부터가 승부다’ 등의 주장으로 전의를 가다듬었다. 북한의 재조사 발표를 앞두고 북한 당국에 대한 압박과 일본 내 여론몰이가 주요 목적으로 보인다.

북한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국방위원회 소속의 국가안전보위부 및 인민보안부 책임자를 포함해 약 30명으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북한 당국은 예전과 견줘 진일보한 일본인 납치자 재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온 일본의 인도지원 관계자에 의하면 북한 당국자들의 북-일 교섭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고 예전과는 다른 특별한 배려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북한의 생각과는 달리 일본 당국과 보수진영이 북한의 재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일 정부간 스톡홀름 합의가 이루어진 지난 5월과 비교하여 일본의 국내외 정세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것도 북-일 교섭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내적으로 아베 내각과 보수 미디어의 ‘아사히신문 죽이기’는 일본 국내 여론을 급격하게 보수화시키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의 무차별 강제동원을 증언했던 요시다 세이지 기사(1991년 보도)와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의 소장이었던 요시다 마사오에 대한 기사(5월20일, 도쿄전력 직원들이 요시다 소장의 명령을 위반하고 도피했다는 정부조사위의 내용 보도)에 대해 아사히신문사가 기사 취소 및 사장 사죄를 단행한 것은 이 신문의 신뢰성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다.

보수진영에서 봤을 때 일본 국가의 품격을 결정적으로 손상시키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방사능 사태에 대한 <아사히신문>의 보도 태도는 일본 보수화의 장애물이고 눈엣가시였다. <아사히신문>의 보도기사 취소 사태로 일본 내 여론 형성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재조사 결과 발표는 일본 보수 미디어에 ‘야수에게 생고기를 던져주는 형국’이 될 것이다.

한편, 국제적으로 미국 오바마 정부의 이슬람국가(IS) 및 시리아 지역에 대한 공습 승인과 새로운 전쟁의 확대는 장기적으로 북-일 교섭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공조를 축으로 북-일 교섭과 북-미 교섭을 동시에 추진하는 외교전략을 추진해오고 있다. 북-일 교섭의 당면한 목표는 북-미 교섭을 진행하기 위한 ‘미국 움직이기’의 성격이 강하다. 북한 선수단의 아시안게임 파견과 일본인 납치자 재조사와 같은 남북 및 북-일 관계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태도는 북-미 교섭의 토대를 만들고자 하는 전략적 측면이 엿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개시로 미국 내 어젠다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즉각적인 북-미 교섭의 가능성이 약해진 상황에서 북한이 어디까지 납치자 재조사 결과를 인정할지 수위 조정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일 국교정상화는 역사적인 경험으로 볼 때 북·일 두 국가만의 노력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남북회담 및 북-미 교섭이 동시에 진행될 때 그 가능성이 한층 커질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 정부는 두 손 놓은 채 북-일 교섭을 지켜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남북회담을 통해 북-일 교섭의 향후 영향에 적극 대비하는 외교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기다린다고 대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인 외교를 통해 만들어갈 때 대박으로 자랄 것이다.

이영채 일본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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